나의 전공은 특수교육 중에서도 장애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려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는 전환교육이다. 그렇다고 전환교육이 졸업과 취업을 코앞에 둔 고등학교 학생들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실질적으로 어려서부터 몸에 밴 습관과 의식 구조가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일찍 시작해야 한다. 장애학생들의 경우에는 일관성과 규칙적 교육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교육을 학교에 일임하지 말고 어려서부터 부모가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가르치는 것이 좋다.

요즘 깨달은 일이다. 전에는 음료수나 생수를 마시고 나서 빈병을 아무 생각 없이 쓰레기통에 넣었었고 재활용 자체를 이런 저런 핑계로 귀찮아했었다. 그런데 제자 중에 재활용의 달인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우리 집에 왔다가 갈 때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늘 자신이 마시던 병을 수거해 가는 것이었다. 처음엔 재미삼아 내가 마시던 병도 빨리 비워 챙겨주었다. 근데 얼마 지나서부터는 그가 오지 않는 날에 마시고 난 병들도 줄을 지어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은 거기서 끝나질 않고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점점 더 발전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는 밖에 나가서도 적어도 내가 마신 빈병은 다 집으로 들고 돌아오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달인을 만나 몇 년 동안 재활용 훈련을 하다 보니 그것이 습관화되어 생활의 변화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대로 지나가지 못하듯 길을 지나다 맥도널드만 보면 드라이브 드루를 해 일회용 컵에 가득히 콜라를 사 마시던 내가 어느 날부터인가 일회용 컵을 버리는 것이 아까워 PET병에 들은 생수를 박스로 사서 차에 실고 다니며 마시게 되었다. 요즘은 신문까지 모아 학교 앞에 있는 재활용 센터에 가서 돈으로 바꾸어 오는 일까지 하게 되었다. 돈도 꽤 된다. 그렇게 모은 돈을 한국에서 온 조카에게 은행계좌를 열 때 첫 자금으로 주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빈병을 수거해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훌륭한 자식들 때문에 돈 걱정이 없으신 노인분들도 빈병 수거로 소일을 하시고 그렇게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는 경우도 있다고 들은 것 같다.

미국 제자 중에도 재활용 달인이 있다. 특수학급이 세 학급이 있는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제자인데 학급의 학생들에게 늘 재활용을 가르치고 집과 학교에서 모아온 것을 팔아 학급기금을 마련해 왔는데 곧 학교 앞에 있는 가정집을 구입해 학생들에게 실생활 훈련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을 하고 있다.

장애 자녀들에게 매일 가정에서 나오는 재활용품을 모으는 일을 어려서부터 습관화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것은 곧 자녀에게 책임감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모은 것을 세어보며 셈하는 기능을 가르치며, 재활용 센터에 가서 돈으로 바꾸어 오는 비즈니스를 가르치며, 받은 돈을 은행에 입금하고 그 돈을 조리 있게 사용하는 실질적이고 기능적인 교육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은 돈을 버는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돈을 버는 것 외에 사람을 만나는 기회도 되고 살아가는 의미가 되고 사회에 공헌하는 기회가 되는 중요한 것이기에 돈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이 습관화 될 때 삶의 가치가 생긴다. 요즘 경제가 어려워지며 소비보다는 아끼며 생활하는 삶이 우리에게 가치 있는 일로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부터 자녀들과 재활용을 해보면 좋겠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