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산호세 이 에스더 사모님의 출판기념예배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아는 분은 아니지만 남편의 소식으로 인해 제일 먼저 어느 집사님을 통해 이 분에 대하여 알려 주셨다. 남편과 거의 같은 나이에 3년전 돌아 가신 분이고 사모님 홀로 어려운 시간을 잘 이겨내신 분이니 꼭 어려울때마다 만나 보면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란다. 아직도 여러 가지 정리하는 일들로 바쁜 가운데 만날 만한 마음의 준비가 안된 관계로 망설이고 있다가 마침 그 분께서 출판 기념회를 한다는 기사를 보고 나선 것이다.
뒷 자리에 앉아 추천의 말씀을 하시는 목사님들, 사모님과 관계하신 분들의 말씀을 듣다보니 도저히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룰 수 없어 끝나자 마자 그 자리를 뛰쳐 나오고 말았다.
그 날 순서에서 어느 목사님께서 추천사로 이런 말씀을 하신다. “사랑은 집착이다” 하니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집요한 집착이고, 그 사모님의 목사님에 대한 사랑도 집착이란다. 나도 분명 현재 어려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집착”이 아닐까하는 두려움에 사로 잡힌 적이 많았다. 집착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정신과적인 의학용어이며, 병적인 용어로 들리기 때문에 거부감으로 느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도 집착이었다는 말을 듣고보니 최근의 나의 모습이 스스로 합리화된다.
거실 제일 잘 보이는 자리에 그 날의 큼지막한 남편의 영정사진을 걸어 둔다. 화장한 그의 재를 침실 한 곳에 보기 좋게 놓아 둔다. 그가 입던 옷들을 깨끗이 세탁하여 언젠가 다시 입을 날을 기다리 듯 옷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아 둔다. 곳곳에 오래 묶은 그의 기억들을 모두 끄집어 내어 잘 보이는 곳에, 손에 잘 닿는 곳에 놓는다. 그가 메모했던 사소한 쪽지들까지도 그 친필이 아까워 버리질 못한다. 그러나 사라져 없어지는 것은 나도 붙잡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가 있을때 함께 담그었던 김치가 얼마전에 다 떨어졌다. 그와 함께 썼던 치약도 조금 있으면 다 떨어진다. 없어질 소모품은 이렇게 하나 하나씩 사라져 갈 것이다. 내 기억도 소모될까 두려워 여기 저기 기록을 남기는데 바쁘다. 언제까지 이 집착이 갈까, 그분을 이 책을 출판하며 목사님에 대한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는데 과연 그렇 수 있을까 그것조차 두렵다.
나는 오늘도 남편에게 전화한다 “네 김종호 목사입니다. 메세지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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