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는 여름나무들이 싱싱하게 초록의 잎을 펼치고 서 있다.
지금으로 부터 40여년이 가까운 아득한 추억이 피워나는 아침이다.
2년 반 만에 급히 달려간 고국에서 어렵게 시간을 내어 동창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진 날이다. 서울 지리에 낯설긴 했지만 전철을 타고 전광판에 나타나는 정거장에 신경을 써가며 목적지에 도착, 여고동창생들과의 만나는 순간 여고시절 순진한 소녀의 꿈 많던 젊은 날의 꿈들이 이루어진 듯 한 모습들을 피부로 느껴보니 즐겁다.
먼 거리 일동에서 이른 새벽 출발해 우리 일행을 데리러 온 친구 차에 올라 바쁜 출근시간의 혼잡한 서울 길을 기술적으로 운전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서울 운전은 보통기술로는 엄두도 못 낼 곡예운전에 익숙해야만 가능하리라. 아마도 2시간 족히 운전해 일동의 어느 멋진 전통한옥으로 차를 몰고 들어간다.
난 친구가 일동에 별장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단한 재력가구나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별장이 아닌 일동의 유명한 갈비집이라나. 잠시 잠깐의 상상나래를 내려놓느라 우린 한바탕 웃음파도를 타고, 이글이글 벌겋게 달은 숯불위에 갈비를 올려놓고 마늘을 듬뿍 얹은 채 익어가는 갈비 속에 우리 우정도 깊어갔다.
유명하다는 “이동갈비맛”에 정신없이 먹다보니 포화상태를 이기지 못해 쩔쩔매는 우리를 친구는 이곳에 산정호수가 있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다.
산정호수 표지판이 보이는 순간 잃어버린 과거의 한 자락을 잡듯 40여년 속 그날의 추억이 슬금슬금 고개를 든다. 정확히 38년 전 직장동료 가족 50여명을 태운 대형버스와 뒤에는 잔뜩 먹거리와 여흥 준비만반을 갖춘 또 한대의 차량이 뒤따랐고 서울을 떠나 달리는 버스 안은 내내 신나는 달밤이었으니 적지 않은 젊음이 내뿜는 열기 속에 긴 여행이 아닌 하루나들이다.
식사가 끝나고 갖가지 여흥순서 뒤이어 밴드가 음을 발산하자 주위에 소풍객들이 몰려와 진을 치고 앞 다투어 남녀 직원들의 노래솜씨가 펼쳐졌다. 마침 그날은 시부모님은 여행 중이셨고 친정에서는 이사를 하는 날이라니, 아뿔싸! 우린 한살 딸아이를 맡길 때가 없어 끙끙대다 아이까지 대동하고 자꾸 칭얼대는 아이 덕에 자유롭지 못해 속이 탔고 용기도 없어 주눅이 들 정돈데 느닷없이 사회자의 호출에 놀랐고 이끌리어 나가 홍당무가 된 채 늘 즐겨 부르던 나의 18번 ‘라파로마’를 불렀다.
호수가 수면에는 푸른 초봄 하늘이 길게 깃들어 있었고 깊은 호수 수면위로 흰 구름이 흘러가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부른 라파로마는 멋지게 퍼지는 밴드의 반주와 호흡이 잘 맞았는가 일등의 영광과 한 아름의 상품을 안고 즐거워했던 추억들, 칭얼대던 아이도 엄마노래소리에 방긋거리고 옆에서 얼얼하게 박수친 덕이라고 큰소리치던 남편의 그 시절 젊은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 온다.
산정호수에서의 추억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는 젊은 날의 마음에 담긴 특별한 사진첩이다. 더욱이 한 달 후면 미국으로 떠나가야 하는 남편과 미래를 위해 많은 대화가 오고 간 날이기도 했고, 딸아기와 함께 시집에 머물며 남편의 초청장을 기다릴 긴 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지내야 하나를 무척 고민하던 그 시절이 어제 같은데 어느새 딸아이는 다섯 아이의 엄마가 되고 이곳 미국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결단과 인내가 엄청 필요했던 아득한 1971년 봄의 먼 옛일들을 떠 올리면 그것은 언제나 하나의 꽃으로 피어오르듯이 삶을 뒤돌아보는 이력의 세계는 언제나 잡다한 아름다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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