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반을 담당하고부터 버릇이 하나 생겼다.
앉아 있는 학생과 이야기를 할 때는 그 학생 앞에서 무릎을 꿇거나, 아예 털썩 주저 앉아 아이와 같이 무릎을 대고 말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신발(구두)이 불편해 신을 벗고 양말 발로 교실 앞 뒤를 다니며 수업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학부모님 한 분이 왜 교실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여 아이 양말을 그 꼴이 되게 하였느냐며 항의를 했다.
신을 벗으라고 한 적은 없지만, 제가 신을 벗고 수업을 한다고 하니 의아해 했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의 숙제 검사를 하거나 수업 내용 습득 확인을 위해 학생들 사이를 다니며 위에서 내려다 보면, 숙제를 해 왔건 그렇지 않건, 수업 내용을 이해 했건 말건 학생들 대 부분은 주눅든 표정으로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비좁은 공간을 헤집고 무릎을 꿇고 앉아 학생의 책상에 가슴을 대고 눈을 맞춰 가며 확인을 하고 곧 바로 칭찬의 3단계 포옹과, 위로의 강약 포옹, 환희의 손뼉 치기, 격려의 손 가락 대기를 하고 위로와 격려를 받은 학생에게는 꼭 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 다음 순서를 진행한다.
그러다 보니 교실은 가끔 난장판 일수도 있지만, 학생들은 감정 표현을 좀 더 정확하게 할 수 있게 되었고 핑계 대는 일이 적어졌으며, 자신 있게 수업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교사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우리 반은 이래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 바람만이 내 가슴을 꽉 채우고 있어서 내 눈 높이에 어린 학생의 눈과 가슴이 맞춰지길 안달복달, 교사 생각으로 학생들을 판단하여 학생들의 가슴은 아랑곳 없었다.
그런데, 늘 채워지지 않는 나의 욕심에 대해 한 어린 학생의 말에 가슴이 뜨끔했다.
「너는 선생님이지, 나가 선생님이면 나가도 해지요」
내 욕구 충족을 위해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저지른 나의 큰 실수.
그 후, 생겨진 버릇으로 아이의 눈이 내 마음을 읽게 하고, 내 눈이 아이의 마음을 읽을 수 있도록 눈을 맞추고 가슴을 맞출 수 있게 아이와 같은 시선으로 활동하는 것이었다.
느껴지는 아이의 심장 박동으로 내 열정과 사랑은 다듬어져서 다시 아이의 가슴에 「선생님은 내 마음을 알아 주는 사람」으로 새겨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연말 북 가주 교사 협의회에서 추천해 주시고, 지역 사회에서 큰 상을 주심에 감사 하며, 올 해도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학생의 상황에서 학생의 마음을 헤아리고 느낌을 공유하는 따뜻한 마음의 교사로 학생과 가슴 높이가 같은 교사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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