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별’의 이유 모를 자살에 미 디자인계 충격
도발과 역설의 디자인으로 각광, 35세 ‘개념 미술가’
한 달여 전 35세의 ‘떠오르는 별’, 토비아스 웡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미 디자인계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면서 확실해진 것은 그의 삶처럼 그의 죽음 역시 쉽게 설명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다.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는 지난 5월30일 온라인 뉴스에서 디자인계의 앙팡테리블 토비아스 웡의 자살 소식을 읽고 너무 놀랐다. “넌 지금 막 성공적인 전문직을 시작했잖아? 왜 이런 거야?” 그는 수없이 되물었다고 말한다. 뉴욕 뮤지엄 오브 모던 아트의 건축 및 디자인 큐레이터 파올라 안토넬리는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베이루트에 있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생각을 추스르느라 한동안 침대에 앉아있어야 했다.
쾌활한 외면 뒤에 몽유병으로 고통 받은 어두운 그늘
필라델피아의 디자인 교수 라마 초파시는 한 학생에게서 그 소식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다. 유쾌한 장난꾸러기로 이름 난 웡이 무엇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단 말인가? “내게 스친 첫 생각은 ‘이것도 아마 그의 풍자 중 하나일 것이다’였지요”
토비아스 웡이 죽어? 왜? 왜 하필 지금? 내리막길 걷는 고생하는 예술가도 아닌데…복합적이고, 쾌활하고 장난기 넘치는 그는 전혀 비참한 상태가 아니었다.
어느 모로 보나 그는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새로운 디자인 에이전시를 막 오픈하려던 참이었고 뉴욕의 주요 디자인산업 쇼인 최근의 국제 현대가구 페어에서 성공적인 전시도 막 끝낸 후였다. 6년째 파트너인 32세의 광고디자인 매니저 팀 더빗스키와의 가정생활도 곧 대리모를 통해 아기 갖기를 의논하는 등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시 말해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웡이 죽음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을 남겼다는 것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살았을 때도 늘 그랬으니까. 사실 그의 작품세계는 바로 그 점에 출발해 쌓아온 것이었다.
캐나다 밴쿠버 출신인 웡은 토론토 대학에 이어 뉴욕 맨하탄의 쿠퍼 유니언에서 미술과 건축을 공부한 후 점차 조각에 치중했다. 반문명적 반전통적 예술운동, 다다이즘에 깊은 영향을 받은 웡은 사치와 소비주의 개념에 대한 의문을 제시하고 풍자하는 작품들로 관심을 모으며 명성을 쌓아왔다.
검정 고무에 담근 티파니의 진주 이어링을 티파니의 유명한 푸른색 상자에 넣어 팔았고 방탄 섬유로 장미꽃 브로치와 이불을 만들어 ‘안전:디자인이 위험과 맞서다’란 타이틀로 2005년 뉴욕현대미술관 전시에 출품하기도 했다.
맨 처음 주목을 받은 작품은 ‘이것은 램프다’였다. 유명 가구디자이너 필립 스탁의 버블클럽 체어에 조명기구를 넣어 의자를 조명기구로 바꾼 작품이다. 이후 맥도날드의 커피 젓는 플라스틱 막대가 코케인 흡입에 애용되고 있는 세태를 비틀어, 금도금한 ‘코케인 스푼 #1’을 만들고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키의 드레스를 컴퓨터 스크린 커버로 디자인하는 등 도발과 역설의 재기 넘치는 작품을 계속 선 보이며 디자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 같은 자신의 작품 경향에 대해 스스로 ‘paraconceptual(기생적 개념)’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정의했다.
“난 토비아스를 디자이너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아티스트였다. 그의 오브제들은 진술들이었다. 그의 작품들이 가진 깊은 의미는 디자인계로 하여금 우리가 지금 무엇을, 왜 하고 있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고 디자이너 라시드는 말한다.
지난 주 소호에 있는 카페넬리 쇼룸에는 많은 뉴욕 디자인계 인사들을 포함한 100여명이 모여 웡을 위한 추모 모임을 가졌다. 웡의 생전 모습에 맞게 추모회의 분위기는 형식없이 자유로웠고 활기찼으며 엉뚱하기도 했다. 눈물어린 추모사 같은 것은 없이 전시된 그의 작품들을 둘러보는 등 마치 멋진 스토어의 개업식 같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참석자들은 자살소식도 웡의 연출 중 하나이며 그가 어디선가 튀어나올 것으로 반쯤 기대하고 왔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작품과 일을 통해 보여졌던 밝은 면모 뒤에는 그의 정신에 압박을 가하는 어두운 그늘도 있었다.
정신병력이나 특별한 건강문제는 없었다. 마약중독도 아니었으며 자살직전까지 이렇다 할 이상증세도 보이지 않았다. 한가지, 그가 늘 시달린 것은 극도의 수면장애였다. 특히 몽유 증세가 심했다. 수없이 많은 의사를 찾아다녔고 민간치료에도 의존했으나 한밤중에 일어나 헤매는 증세는 거의 매주 나타났었다.
맨하탄 검시국은 그의 사인을 목을 매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유서는 없었다. 그의 파트너 두빗스키는 웡이 언젠가 자필로 쓴 기도문을 보여주었다.
“이제 난 자려고 눕습니다. 내가 만약 깨기 전에 죽는다면, 내가 만약 통제하지 못해 어떤 일을 한다면, 이건 하나의 조크입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토비아스 웡과 그의 2002년 작품 ‘의자 넘버1과 2’
지난 주 열린 토비아스 웡의 추모 모임.
웡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이것은 램프다’.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의자에 조명기구를 집어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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