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런 얘기지만 미국은 땅이 크다. 시애틀에서 뉴욕까지 비행기로 5시간 걸린다. 뉴욕에서 하와이까지는 시애틀에서 서울 가는 시간과 맞먹는다. 큰 땅덩어리에 걸맞게 산도 크고, 강도 크고, 평원도 크고, 나무도 크다. 농작물도 크다. 좀 과장하자면 호박 하나가 암반 만 하고 양배추 한포기가 자동차 만 하다.
그러나 필자의 머리에 맨 먼저 떠오르는 미국의 진짜 ‘대물’은 따로 있다. 사우스다코타의 러시모어 산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 조각이다. 시애틀에서 약 1,200 마일 거리여서 자동차로 다녀오기에 좀 버겁지만 매년 이맘때면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도력을 발휘했던 네 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온다.
젊어서부터 동경했던 마운트 러시모어를 3년 전 다녀왔다. 독립기념일이 훨씬 지난 10월초 자동차로 꼬박 이틀을 달린 후 밤중에 종점인 블랙 힐스의 키스톤에 도착했다. 내륙 산간지역인 그곳은 이미 한 겨울이었다. 도로가 군데군데 얼어 있었다. 모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러시모어 산으로 달렸다. 밤중인데다 기온도 영하여서 경내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스포트라이트에 비쳐진 조지 워싱턴(초대), 토머스 제퍼슨(3대), 시오도어 루즈벨트(26대), 아브라함 링컨(16대) 등 낯익은 얼굴의 대통령들을 한동안 독대하는 영광을 누렸다.
해발 5,500 피트의 바위산에 새겨진 이들 조각은 머리통만 6층 빌딩(60피트) 만큼 크다. 코의 길이가 20피트, 입의 넓이가 18피트, 눈의 길이가 11피트이다. 이에 비례해서 전신대를 조각하면 신장이 무려 465피트에 달한다. 옛날 알프렛 히치콕 감독의 걸작 스릴러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North By Northwest)’에서 캐리 그랜트와 에바 마리 세인트가 워싱턴 대통령의 두상 위에서 악한들에게 쫓기는 장면을 손에 땀을 쥐고 보면서 “아니, 세상에 저렇게 큰 조각이 있다니…”하며 의아해했었다. 이 장면은 실제로는 러시모어 아닌 할리우드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아무리 영화지만 살인미수 범죄행각이 존엄한 대통령의 면상에서 벌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국립공원 당국이 결연하게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들 조각상은 사우스다코타의 관광수입을 위해 기획됐었다. 처음엔 인디언 추장과 백인 탐험가들을 새기려다가 거장 조각가 거트존 보글럼이 주도하면서 위인 대통령 4명으로 바뀌었고 장소도 좁고 뾰족한 니들 산에서 더 큰 러시모어 산으로 옮겨졌다. 러시모어는 1885년 이 산을 ‘처음 발견한’ 뉴욕 변호사 찰스 러시모어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애틀랜타 교외의 스톤 마운틴에 말 달리는 남부군 장군들을 조각하는 작업에도 참여했던 보글럼은 러시모어 조각을 국책사업으로 전환했다. 의회에 열심히 로비해 공사비용 100만 달러 중 총 83만6,000 달러를 받아냈다. 공사가 1927년 시작돼 14년 만에 완성됐지만 실제 조각 작업기간은 6년뿐이었다. 기금이 모자라 자주 중단됐기 때문이다. 보글럼은 공사가 끝나가던 1941년 사망했고 그의 아들 링컨 보글럼이 대를 이어 작업을 완료했다.
러시모어에 가는 도중 또 다른 대물을 볼 수 있다. 와이오밍 접경부근에 1,267피트나 치솟은 ‘악마의 탑(Devils Tower)’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70년대 공상영화 ‘주변 3종류의 만남(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 끝 부분에서 외계인의 비행접시가 착륙하는 바로 그 바위산이다. 필자 가족은 러시모어에 갈 때와 돌아올 때 두 차례 이곳에 들러 바위 밑의 일주 등산로(1.3마일)를 걸으며 산이 풍기는 야릇한 신비감에 도취됐었다.
넓은 땅덩어리에 사는 미국인들은 큰 것을 선호한다. 축소지향적인 일본인들과 다르다. 일본처럼 좁은 땅에서 온 한인들도 마운트 러시모어에 한번 찾아가 산 전체를 위인 대통령들의 조각으로 채운 통 큰 미국인들의 호연지기를 자녀들이 배우도록 해주는 게 좋겠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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