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증오범죄(Hate crime)라고 말하는 것은 타 인종에 대한 미움에서 비롯된 범죄를 가리킨다. 인종증오는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다. 미국은 비교적 인종증오 범죄가 적다고 하지만 FBI의 보고는 그렇지도 않다.
2010년도의 통계는 다음과 같다. 연간 6,628회의 인종 관계 범죄 사건이 있었으며, 그 중 47.3%는 타 인종과의 마찰에 기인되었고, 20%는 종교적인 갈등, 19.3%는 성(性) 관계의 마찰, 12.8%는 타 국적자에 대한 배척, 0.6%는 신체와 정신장애자에 대한 멸시였다.
1963년 워싱턴 대행진 때 연설을 맡은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백인들을 불신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형제이다. 백인의 운명과 흑인의 운명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백인의 자유와 흑인의 자유도 서로 맞물려 있다. 어느 한 쪽도 혼자 걸어갈 수는 없다. 우리 흑인들이 자유를 갈망한다고 해서 증오의 잔으로 자유를 마실 수는 없다.”
킹 목사의 민권운동은 반항이 아니라 협조와 모두의 복지를 호소한 것이며 싸움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나는 예수의 사랑 정신과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킹 박사가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에 ‘내 마음이 어떻게 변했는가?’라는 제목으로 크리스천 센추리 지에 기고한 글이 있는데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에 편안한 날을 별로 갖지 못했다.
앨라배마 감옥에 다섯 번 투옥되었다. 내 집이 두 번 폭파되었다. 나와 나의 가족을 죽이겠다는 전화를 거의 며칠에 한 번씩 받았다. 나는 칼에 찔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더 이상 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갈 수 있을지 정직하게 말해서 나 자신에게 조차 의심스럽다. 주님을 믿을 때 고통은 오히려 창조적인 능력으로 변한다는 것을 여러 번 체험하였다.”
킹 목사의 위대함은 그가 인류 복지를 향한 꿈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도 꿈을 가졌고, 부조리와 불의와 폭력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다. 그는 바위에 계란 던지기와 같은 상황에서도 결코 절망하지 않고 빈손으로 약한 사람들을 이끌고 전진하였던 것이다.
꿈이란 그것이 고상하고 남을 위하는 것일수록 행복의 에너지가 된다. 가난한 사람이란 돈이 없는 자가 아니라 꿈이 없는 자이다. 킹 목사는 노벨 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폭력을 쓰지 않는 것만이 현대의 혼란한 정치와 도덕에 대한 해결책이다. 압제와 폭력을 극복하기 위하여 또 다른 종류의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 비폭력은 아프고 괴로운 과정이지만 거기에만 속량(Redeem)의 힘이 있다.”
지난 16일은 킹 목사 탄생 기념일이었다. 미국이 국경일로서 ‘마틴 루터 킹의 날’을 제정한 것은 계속되고 있는 모든 이민의 물결을 위하여서도 의미 있는 결단이었다. 킹 목사가 남긴 유산은 이민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가 항상 간직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꿈을 간직하자. 그리고 우리와 다른 것에 대해 관용의 마음을 갖자.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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