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지식인.유럽 이데올로기 전초기지 선택
사우스버리 타운의 교회와 마을 회관으로 쓰던 석조 건물
뉴 헤이븐 카운티 서쪽 내륙지방에 위치한 사우스버리(Southbury/Selectman Ed Edelson)는 흥미로운 역사를 지닌 작은 타운이다. 동북쪽은 미들버리(Middlebury), 동남쪽으로 옥스포드와 뉴 타운, 동쪽은 부룩필드, 서쪽으로는 록스버리(Roxbury)와 우드버리(Woodbury)에 인접해있다.
현재 인구 1만9,904명(2010년 인구조사)과 40.1평방 마일의 면적을 가진 사우스버리 타운은 1659년 파우게셑(Paugussett) 인디언족으로부터 토지를 매입한 우드버리의 일부였다가 1673년 분리되었다. 1773년에는 마을회관과 교회를 겸한 건물을 세우고 주위 부락을 통합, 1787년 타운을 형성하고 리치필드 카운티에 속한 후 뉴헤이븐 카운티로 이관되었다.
1900년대에는 볼셰비키 혁명으로 추방된 러시아 지식인들의 핵심 그룹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유럽처럼 이곳도 혼란을 겪기도 했다. 이때 제일 처음 온 그룹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을 쓴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의 아들인 일리아 엘보비치 톨스토이 백작 그룹이었다. 일리아 톨스토이 백작과 동료작가인 조지 그래밴스치코(George Grebentschikoff)는 1925년 추레브카 빌리지에 러시아 작가 공동체를 설립했다.
이 추레브카(Churaevka)라는 이름은 그래벤스치코프 작품에 나오는 ‘허구의 시베리아 마을’에서 따왔으며 오늘날 러시안 빌리지 역사적 행정구역으로 알려졌다. 지금 남아있는 것은 허름한 작은 석재 교회당과 톨스토이 래인과 키이브 드라이브와 같은 도로명만 남아있다. 또 다른 유럽 이데올로기의 의 미국 전초 기지로 선택했으나 환영 받지 못했다. 1973년 아메리칸 나치의 한 그룹이 캐틀 타운(Kettletown)에 178에이커 땅에 캠프를 설치하고 활동을 시작했다.
사우스 브리테인 회중교회와 (Re. Edgar N. Linsay)와 사우스버리 연합교회(Re. Felix A. Manley)와 주민들이 이들의 나치즘과 파시즘에 대항했으나 역 부족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코어(Esward Coer)시장이 성경에서 금지하는 일요일 노동 금지를 법제화 한 주 정부의 (일명 ‘Blue Law’) 도시 계획법을 시행하고 이를 위반한 이들을 구속 하므로 이 단체는 사우버리를 포기하고 떠났다. 캐틀타운 땅은 초기 유럽인들이 파우거셑 인디안 원주민으로부터 황동 주전자 하나를 주고 얻었던 땅의 일부분이다. (계속)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