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코네티컷 토요한국학교 교장>
어느덧 12월 또 한해가 저물어간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앞에 아침이슬처럼 한순간 사라지는 인생의 무상함이 엄습해온다. 갑자기 파도처럼 주체할 수 없는 우울한 감정이 내 마음 방을 순식간에 덮친다.
요즘 마음공부에 흠뻑 빠져있는 나에게 이제 내 마음을 가지고 마음껏 실험해 볼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아 은근히 반갑기도 하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일단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집중했던 나의 시선을 온기가 가득한 방안으로 돌린다.
따스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내가 마치 치료사가 된 것처럼 내 마음에게 질문을 시작한다. "지금 내 마음은 왜 이렇게 우울한 거지?" "덧없이 가는 세월을 어쩔 수 없이 보내야만 하는 인간의 한계가 슬퍼서"라고 애매모호한 말로 답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솔직히 대답해 달라고 한 번 더 내 마음에게 부탁을 한다. "올해도 여전히 해야 할 일들을 계속 미루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내 자신이 밉고 싫어서" 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그렇게 내 마음이 힘들었구나" 내 마음이 내게 들려주는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정답이 나온 것 같아 맞장구를 쳐주며 안도의 숨을 내쉰다.
내 마음의 ‘우울함’이라는 감정 밑바닥에는 ‘자신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깔려 있었던 모양이다. 이제는 내 마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래도 작년보다는 좀 나아졌어!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한 적도 많고... 이만하면 잘 살았어! 조금, 조금씩 앞으로 나아지면 되잖아! 이제 내 자신을 용서하자! 다행히 나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시간들이 아직 남아 있잖아! 우울한 감정을 이겨 내려면 감사하는 마음이 최고라잖아. 우리 감사하는 마음을 한번 초대해 보면 어떨까?"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기억으로 움츠러들던 내 마음에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용서’와 ‘감사’라는 감정을 소개하고 나니 어느새 다시 생기가 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아프다"고 호소를 하며 급기야 대성통곡을 한다. 한참동안 침묵이 흐른다. "그래, 너무 많이 힘들었구나!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들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쓰리고 있구나! 우리 마음에 상처를 치료하는 약을 한번 발라보면 어떨까? 내가 내 자신에게 용서를 구한 것 같이 이제 다른 이들에게 용서가 필요한 것 같아! 밉고 원망스럽고 섭섭하고 분노가 일어나는 건 너무도 자연스런 일이야. 인간은 누구나 이런 감정들이 있단다!
그렇지만 이런 감정들을 그대로 방치하면 조그만 상처가 곪아서 나중엔 독이 온몸으로 퍼져 암 같은 커다란 상처로 변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실 용서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위한 게 아니고 결국 이런 치명적인 상처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신이 허락한 명약이라고도 할 수 있지."
한참을 이렇게 내 마음에 호소하며 소곤대었더니 결국 마음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용서’라는 약을 바르기로 결심한다. 이번 한번 치료로 완쾌되지는 못 할 것이다. 그래서 계속 마음이 시릴 때마다 이 약을 처방해 주기로 약속을 한다.
이제 내 마음이 다소 안정을 찾은 것 같아 선율이 고운 음악을 들으며 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한장 한장 넘겨본다. 한 해 동안 가족과 나누었던 사랑과 친구와 나누었던 우정의 소중한 기억들이 내 마음을 감싸 안는다. 내 마음은 다시 "행복하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또 한해가 간다고 한탄하며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토록 처량하게만 보였던 창문 너머 한편에 서 있는 나무에게 ‘아무리 거센 폭풍우가 찾아온다 해도 뿌리가 깊은 나무는 쓰러지지 않는다는 자연의 법칙을 속삭여 준다. 쓰러질 것 같아 겁이 났던 두려운 마음도 이제 사라진다.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역경을 견디며 열매도 맺고 꽃도 피운다. 그런 나무의 뿌리는 사람으로 치면 마음일 것이다. 사람의 모든 것은 결국 우리네 마음으로 부터 출발한다. 묵은 달력을 떼어내고 새 달력을 준비하는 12월에는 한 해 동안 여기서 치이고 저기서 치여 생채기가 난 마음을 보듬어 주자.
아프다고 응석을 부리는 마음을 토닥여 주자. 그리고 나면 이해인 시인처럼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고마운 시간들이여" 라고 노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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