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 은퇴 후 병원 자원봉사 천양곡 선생
▶ 루터란 병원 볼룬티어 중 유일한 한인

루터란병원의 유일한 한인 자원봉사자 천양곡 선생. 그의 주된 업무 중 하나는 휠체어를 미는 것이다.
은퇴한 정신과 전문의 천양곡 씨는 요즘 매주 목요일 오전 8시부터 정오까지 팍리지에 있는 루터란제너랄병원 안내데스크 일을 돕는다. 800명이 넘는 병원 자원봉사자들 중 유일한 한인이다. 의사지만 40년간 들어온 ‘닥터 천’이 아닌 ‘미스터 천’으로 불린다. 의료봉사가 아닌 한 자원봉사자를 부르는 병원 규정이 그렇다. 미국의 합리성이 뭍어나는 대목이다. 그와 루터란병원 조은서 한국부 책임자를 함께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 기꺼이 응했다.
천 선생은 병원에서 가장 바쁘다는 안내데스크 일을 자원했다. 병원을 찾는 환자, 환자의 가족, 방문객 50여 명 정도를 매일 상대한다. 주로 환자들의 안내를 돕는데 이로 인해 4시간 동안 병원내 5마일 이내를 걷고, 휠체어를 평균 10번 정도 보조한다. 일을 마치고 나면 고단하다면서 70이 넘은 나이에 쉬운 일은 아님을 실토했다.
“40여 년 동안 나 자신 또는 가족을 위해 의사 생활을 했어요. 은퇴 후 의사로서의 정체성이 모호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남을 돕는 자원봉사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남을 도와주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동시에 제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스스로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은퇴 후 영어로 이야기할 기회가 적은데, 자원봉사를 통해 영어 한 두 마디라도 더 하게 됩니다. 또한 의사가 아닌 위치에서 병원에서 일을 하니 배우는 것이 많아요.”그는 “의사일 땐 아픈 환자들이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고 말한다. “이들을 보며 새삼 삶의 감사를 느낍니다. 감정의 전이 또한 자주 느끼게 돼요. 중환자실을 오가는 환자와 가족들의 슬픔의 감정이 전이됩니다. 이와 반대로 곧 출산할 산모를 축하하기 위해 꽃을 배달하기도 하는데 이 때 그들의 얼굴에 쓰여있는 기쁨의 표정을 읽기도 합니다.”천 선생은 “휠체어를 미는 일을 많이 도와 드리는데 그 때마다 감사의 의미로 1,2달러의 팁을 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면서 “내 인생에 언제 이런 팁을 받아보겠는가” 반문한다. 병원 규정상 팁은 받지 못하게 되어 있지만 뿌리칠 수 없는 팁이 있는 법이다. “봉사 시간 동안 땡큐 소리를 100번 이상은 듣는 것 같아요. 내 평생 들었던 감사 인사보다 봉사를 시작한 후 들은 감사 인사가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천양곡<좌>씨 와 루터란병원의 조은서<우> 한국부 책임자.
자원봉사자가 되기 위해선 2번의 면접과 신원확인을 거쳐야 한다. 조은서 한국부 책임자는 은행장, 병원장 등을 지내고 은퇴한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은서씨는 “병원은 이처럼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자원봉사자들에게 크게 감사하고 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조은서씨는 “루터란은 한인이 많이 방문하는 병원 중 하나로 천 선생님 같은 한인 자원봉사자가 많아지면 병원과 한인사회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한인 은퇴자들의 자원봉사 참여를 독려했다.
천양곡 선생은 자원봉사 뿐 아니라 한국일보 및 각종 언론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아직 의사면허가 살아 있어 전화로 상담을 진행 하기도 한다. 또한 키보드와 요가를 배우는 등 은퇴 전 보다 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만약 죽어 묘비를 남기게 된다면 내 삶은 지루하지 않았다라는 문구를 남기고 싶다”고 전했다.
천양곡 선생은 1942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73년 시카고로 유학, 인턴과 레지던트를 마쳤다. 그 후 주립정신병원(Illinois Psychiatric Institute)과 개인병원에서 40여 년간 의술을 펼쳤다. 이곳서 은퇴 후에는 3년간 한국에 가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진료도 했다. 그가 처음 미국에 올 때 공부를 마치고 다시 돌아가겠다던 계획을 늦게 나마 실행한 것이다.
가족관계로는 아내 박경자 씨와 딸 지윤, 지혜 그리고 아들 지우씨가 있다. 지윤씨는 시카고, 지우씨는 텍사스 오스틴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며, 지혜씨는 토론토대 사회학과 석좌교수다. 자녀 중 의사가 없는 점에 대해 “의사인 아버지를 보고 그 길은 아니라고 생각했나 보다”고 천 선생은 웃었다.
시카고 한인사회 선도언론 시카고 한국일보
615 Milwaukee Ave Glenview, IL 6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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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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