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으나 나는 아직도 미국에 백 퍼센트 흡수되지 못한 느낌이 있다.
그 원인이 과연 내 성격인지, 문화 차이인지, 아니면 두려움인지 나는 아직 완벽히 파악하지 못했다. 그 아쉬움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을 좀더 내몰아보기로 결심했다.
미국 사회에서는 네트워킹이 정말 중요하다고 한다. 취업도 대부분 지인 추천을 통해서 진행되기에 나는 인맥도 쌓을 겸 네트워킹 연습도 할 겸 여기저기 미팅에 참석했다.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백인들 틈에서 열등감을 느끼며 눈물을 훔친 날도 있었지만, 그 두려움이 굳어지기 않게 계속 부수려고 연속으로 이벤트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조금씩 도전을 하고 있을 즈음, 어느 날 한 중년의 남자와 택시를 공유하게 됐다.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됐지만 나는 이것도 연습이겠다는 생각에 덥석 말을 붙였고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즐겁게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취업 준비를 한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날 열릴 파티에 나를 초대했다. 그가 남긴 것은 이메일 주소, 이벤트 장소 및 시간. 그런데 문제는 그가 적어준 파티 장소라는 것이 드넓은 공간이라는 것이었고 그날 밤 정확한 장소를 묻는 내 이메일에 그는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무슨 고집에서인지 나는 다음날 그 장소를 무작정 찾아갔다. 그러다 우연히 구석에 정착되어 있는 3층짜리 근사한 배를 발견했는데, 갑판에서는 음악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회사의 CEO라고 밝혔던 그 남자는 배를 언급한 적이 없지만, 나는 그것이 그가 말한 파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고, 배는 아름다웠고, 갑판에서 화기애애 얘기를 나누는 그들은 나와 전혀 다른 부류의 사람들일 것 같았다.
막연한 환상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한참 배 앞을 서성이며 고민했다. 그리고 정말 큰마음을 먹고 초인종을 눌렀을 때 그 소리는 음악에 묻혀 단 한 명에게도 닿지 않았다. 그때 내가 느낀 허탈함 동시에 안도감을 누군가는 이해할 수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할 만큼 한 스스로에게 뿌듯해하며 답장도 보내지 않은 그에게 생색을 내고자 다시 한번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답장을 했고 정말 미안해하며 다음날 다시 같은 장소로 날 초대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알고 보니 그는 배의 주인이었고,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독일계 미국인, 그리고 내가 단 한 번도 접하지 못한 성격과 가치관을 가진 자유로운 인간이었다. 나는 배 구석구석을 구경한 후 어제는 한없이 높아 보이기만 했던 바로 그 갑판에 앉아 그와 피쉬요리와 와인을 즐기며 황홀한 노을을 감상했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샌프란의 바다 위에서 나는 새로운 사람과 삶의 한 부분을 공유했다. 처음이 주는 두려움을 이겨냈기에 들어선 세계였다. 지금도 그 이틀간의 사건의 흐름과 감정의 변화가 또렷이 기억난다.
나라는 사람은 호기심이 너무나 많은데 두려움도 못지않게 많아서 늘 자신과 싸워야 할 숙명을 타고났다. 두려운 순간이 또 오겠지만, 나는 아마 그날을 떠올리며 힘을 낼 것이다.
주위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건강한 몸을 가진 자로서 이런 두려움에 맞서 싸울 기회가 있는 것도 감사하다며 내 마음을 격려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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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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