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케네디 이민법이 통과되면서 한인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미주 한인 사회 최대 사건이라면 무엇을 꼽아야 할까. 아마도 1992년 일어난 4.29 폭동이 아닐까.
백인과 흑인 사이에 부글거리던 인종 갈등이 로드니 킹 폭행 재판으로 폭발했고 그 피해를 엉뚱하게 흑인 동네에서 장사하던 한인들이 입은 것이다. 며칠간 계속된 폭동으로 수많은 한인 업소가 불타거나 파손되고 수 십 억 달러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주류 언론이나 미 정치권에서 한인들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 때 혜성처럼 나타난 것이 김창준이다. 백인 보수층이 주로 살던 다이아몬드 바에서 시의원으로 당선됐다 순번제로 돌아가는 시장직을 맡게 된 그는 1994년 이를 발판으로 새 선거구 탄생으로 무주공산이었던 다이아몬드 바 지역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했다.
정치적 목소리를 갈망하던 남가주 한인 사회는 물론 타주 곳곳에서도 뜨거운 지지가 이어졌고 김창준은 김창준대로 가난한 유학생이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불철주야 노력한 결과 자수성가한 비즈니스맨이 됐다며 그 은혜를 정치를 통해 미국 사회에 갚겠다면서 백인들의 표심을 파고들었다. 결과는 한인 사회는 물론 타 아시안 커뮤니티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민 1세 연방 하원의원의 탄생이었다.
그 후 3선 가도를 달리던 그는 정치 후원금 스캔들에 휘말려 낙마하고 그 때 그가 후원자들에게 보여준 비겁한 행보와 한인 사회보다는 미국 백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듯한 그의 태도는 많은 한인들의 반감을 샀다. 그는 결국 정계에서 물러났고 그 후 연방 차원의 선거직 진출에 성공한 한인은 나오지 않고 있다.
7일 치러진 가주 예선 결과는 연방은 고사하고 주 의회 진출도 얼마나 어려운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가주 상원에 도전한 강석희, 최태호, 가주 하원에 출사표를 낸 최석호, 박건우, 케빈 장 등이 모두 고배를 마셨다. 현직 주 하원의원인 영 김은 2위로 본선 진출에는 성공했지만 1위를 2년 전 근소한 표차로 이긴 샤론 커크-실바에게 내줘 과연 11월 본선에서 이길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태다. 강석희와 최석호 씨 등은 백인 중산층 거주 지역인 어바인에서 시의원과 시장을 역임하며 지명도가 있는 인물들임에도 이번 예선에서 2등을 하지 못했다.
2006년 가주 조세형평 위원 당선을 시작으로 현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를 역임하고 있는 미셸 박, 현 주 하원의원인 영 김, 작년 예상을 깨고 LA 시의원에 당선된 데이빗 류 씨 등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모두 1.5세로 일찍부터 정치인 보좌관을 하거나 가주 정계에 인맥이 있는 남편을 따라 미 주류 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점이다. 친화력이 뛰어나고 겸손하며 남달리 부지런한 점도 특징이다.
문화적으로나 언어적으로 주류 사회와 거리가 있는 1세가 이들의 대표가 되기는 쉽지 않다. 재능 있는 한인 2세 정치인 발굴과 후원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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