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이 제정된 것은 1948년이다. 그 후 70년이 안 되는 세월 동안 무려 9차례의 개헌을 겪었다. 첫 번째 개헌안은 1952년 6.25 전쟁 중 이승만 정부가 야당 국회의원을 연행하고 국회 의사당을 군인과 경찰로 포위한 상태에서 이뤄졌다.
1954년 이승만 정부는 초대 대통령에 한해 3선 금지 조항을 철폐하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찬성 135대 반대 60으로 개헌에 필요한 2/3에 한 표가 모자라 부결됐다. 그러나 이틀 뒤 재적 의원 203명의 2/3는 135.333이므로 2/3는 반올림하면 135명이라는 논리로 통과를 선포했다. 두 번째 소위 사사오입 개헌이다.
세 번째 개헌은 이승만 정부가 4.19혁명으로 쫓겨나고 1960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뤄졌다. 그리고 곧 이어 민주 반역자를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4차 개헌이 단행됐다.
그러나 이 헌법은 그 다음해 일어난 5.16 쿠데타로 단명으로 끝나고 1962년 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정부 형태를 바꾸는 5차 개헌이 실시됐다. 1969년에는 박정희의 3선을 허용하는 6차 개헌안이 야당은 물론이고 공화당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통과됐다.
1972년에는 박정희 스스로 궁중 쿠데타를 일으켜 황제적 대통령제를 근간으로 한 유신 헌법을 탄생시켰다. 일곱 번째 헌법 개정이다. 여덟 번째 헌법 개정은 박정희의 암살로 유신 체제가 무너지고 전두환이 집권하면서 이뤄졌다.
마지막이자 아홉 번째 헌법 개정은 1987년 민주 항쟁으로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뜻에 굴복하면서 단행됐다. 1960년 이후 처음으로 국민의 뜻에 따라 이뤄진 개헌이다. 그 후 30년 가까이 지속되어온 이 헌법은 대한민국이 태어난 이래 가장 수명이 긴 헌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느닷없이 국민의 피와 땀으로 쟁취한 87 헌법이 수명이 다했다며 5년 대통령 단임제를 파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개헌을 주장했다. 그가 취임 후 지난 4년 동안 “개헌은 블랙 홀”이라며 “지금은 경제에 매진할 때”라고 주장해 온 것을 감안하면 뜻밖의 주장이다. 청와대는 불과 2주전까지 “지금은 개헌을 논의할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개헌이 시급히 진행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부 국회의원과 청와대를 제외하고는 별로 없다. 박대통령 말대로 지금은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때지 개헌 논의로 정치권을 시끄럽게 할 때가 아니다.
그럼에도 최순실 스캔들 등으로 지지도가 역대 최저인 25%까지 떨어지자 국면 전환용으로 꺼내든 박 대통령의 개헌론은 하루 만에 그 ‘최순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그는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1년을 남겨두고 개헌 카드를 꺼내 들자 “참 나쁜 대통령”으로 몰아붙였다. 노무현 임기 말과 그 이후가 어떻게 됐는지 뻔히 알면서 그 길을 가려는 것이었을까.
대한민국의 역사는 개헌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이뤄진 적은 거의 없고 정권의 이익을 위해 좌지우지 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여야가 정말 국민을 위한 개헌에 합의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중구난방으로 시끄럽다 국력만 낭비한 채 끝날 가능성이 많다.
내년은 미국 연방 헌법이 탄생한지 230주년이 되는 해다. 그 긴 세월 동안 원문은 한 자도 손대지 않고 수정 헌법 27개 조항만 추가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헌법 때문에 미국이 잘못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박대통령의 개헌꼼수는 결국 자신의 수준이하 비선 실체, 최순실을 덮기 위한 ‘이불 개헌’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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