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 초에서 6월 초까지 게티미술관에서는 루벤스가 그린 ‘한복입은 남자’ 드로잉을 조명하는 특별전을 개최했다. 작품에 대한 학술 심포지움도 열었고, 루벤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복식과 관련된 조선시대 복식 유물도 한국의 박물관에서 빌려와 전시했으며, LA한국문화원의 후원을 받아 한복이 어떤 옷인지에 대한 강연 시리즈도 기획하였다.
나와 같은 시기에 함께 논문을 쓰고 졸업한 선배인 전주대 박현정 교수가 영국에 방문교수를 갔을 때 이 전시를 기획한 스테파니 슈레이더 큐레이터로부터 한국복식에 대한 문의를 받고 도와주었다. 후에 큐레이터가 감사의 표시로 교육프로그램의 강연자로 초청하였으나 학기 중이라 올 수가 없어 미국에 사는 나를 추천했다. 나는 선배 덕에 강의와 한복 입는 시연을 하는 기회를 얻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온 후 13년만에 하는 강의였다.
영어로 하는 첫 강의를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친구인 파슨즈 디자인 스쿨의 조에린 교수는 “네가 강의를 하는 건 너의 지식이지 너의 영어실력 때문이 아니라는걸 명심하라”고 힘을 줬다. 친정 어머니는 강의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유머 몇 개 집어넣어래이~”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설펐던 첫 강의에 대한 민망함이 크지만, 나름 의미를 갖고 싶은 건 내가 미국에서 한복의 역사를 얘기하면서 ‘발해’시대의 복식을 포함했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국사시간에 배웠던 발해가 한국복식사에는 다루어지지 않아서 석사와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았던 내 연구 영역이었다. 나는 늘 발해 복식이 한국복식사 내에 자리잡기를 바랐었기에 게티미술관의 내 강의를 찾아온 관객에게도 얘기했다. 나도 뿌듯했지만 내 논문을 지도해주신 서울대학 국사학과의 송기호 교수님도 기뻐하실 것 같았다. 그리고 한국복식을 연구하길 잘했구나 생각했다. 내가 만일 서양복식을 했었으면 게티미술관에서 내게 관심이 있었을까? 우리 것을 연구하여 얻은 고유한 전문성이 미국에서 쓰일 날이 올 줄은 내가 한국을 떠날 때에는 상상도 못했었다.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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