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나의 남편은 1985년 3월 25일 LA에서 태어나 뉴욕과 미시간에서 자랐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계 다국적 기업의 서울 지사에 발령받았다. 첫 사회 경험을 부모님 고향인 서울에서 시작하게 된 감회가 남달랐겠지만, 그의 서울살이 3년의 최고 수확은 나처럼 훌륭한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이었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주장한다).
비록 송중기 같은 꽃미남은 아니었으나, 그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는 청산유수인 말솜씨로, 어찌나 논리 정연한 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남자들보다도 한국어가 유창했다.
다만, 그의 말투는 조금 특이한 데가 있었다. 그것은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이었다. 긴 외국 생활로 말씨가 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교포들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던 어느 날, 나는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그 미스터리를 풀었다. 스물네 살짜리 막내 아들이 서울 간 지 반 년만에 웬 여대생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떼를 쓰니 깜짝 놀라 미시간에서 달려오신 어머님과 만났을 때, 모든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남편의 말투는 어머님과 너무도 비슷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늘 어머님하고만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었기에, 모자 간의 말투가 꼭 닮게 된 것이다. 20대 남자가 중년 여성의 말투를 쓰니 미묘할 수밖에 없다.
5년 전 남편을 따라와 미국 생활을 시작하게 된 이후, 나는 줄곧 미국에서 나고 자라게 될 미래의 내 아이와 한국어로 원활히 소통하게 되길 바라왔다. 마치 우리 시어머님과 남편처럼 말이다. 그래서 어머님께 살짝 비결을 여쭈어 봤더니 명쾌하게 두 단어로 대답해 주셨다. ‘뽀뽀뽀’와 ‘드래곤 볼’. ‘뽀뽀뽀’는 이미 종영되었지만, 요즘은 ‘뽀로로’가 있으니 일단 안심이다. 그러나 정말 ‘뽀뽀뽀’와 ‘드래곤 볼’이 일등 공신이었을까? 미시간 시댁에 갈 때마다 어머님과 마주 앉아 조근조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진짜 비결은 저 모자 간의 기나긴 수다 타임이 아니었을까 하는 강력한 의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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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씨는 이화여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대학원을 준비하며 어린이책 출판사의 북에디터,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던 중 2012년 도미했다. 현재는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며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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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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