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좋고 물 좋은 산타 크루즈(성 십자가)에 정착한 지 23년이 되었다. 나의 60평생 중, 한 곳에서 산 것으로 치면 제일 오랫동안 살았고, 앞으로도 이곳에서 나의 생을 마감하려 하니 제 2의 고향이라고 해도 되겠다. 더구나 작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의 묘소 옆에 남편과 나의 영원한 안식처를 미리 마련하여 놓았으니, 어디 다른 곳으로 가려는 마음이 없게 되었다.
그동안 이곳에 살면서, 대관령 같이 구비구비 돌며 험한 17번 도로 커브 길을, 사시사철 변하는 모습을 감상하며, 산등성이를 넘나들며 매일 산호세로 운전하고 다니면서 사고도 났었고, 출퇴근길에 교통 정체가 심해 고생도 했었지만 올 겨울 폭풍처럼 산사태로 인해 아예 교통이 두절되어 집에도 가지 못하고 산호세에서 지내야 했던 경험을 7번이나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부부의 산타 크루즈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날씨가 온화하고 공기 좋고, 10분만 나가면 아름드리 레드우드가 빽빽히 위용을 자랑하고 서있는 산과, 배로 가면 15일이면 도달할 수 있는 우리의 조국을 마주한 태평양 바다가 양쪽에서 반겨주며 樂山樂水(요산요수)를 즐길 수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더욱이 이곳 사람들은 매우 순박하고 친절하다. 현대와 옛것이 어우러진 고색창연한 다운타운을 걷다가(다운타운이라 해 봤자 남북으로 길게 난 길을 5분만 빨리 걸으면 끝나는 길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눈이 마주치면 서로 빙긋 미소를 짓거나 “하이!” 하며 지나간다. 오죽하면 유타 주에서는 홈리스들에게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편도 그레이하운드 버스표를 사주고 캘리포니아주의 산타 크루즈로 가서 겨울을 지내고 돌아오지 말라고 하겠는가?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어디에서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생명력이 강한 민들레 같이 질기고 힘차게 산타 크루즈의 한인으로서 산 증인이 되어 즐거운 생을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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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례씨는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졸업하고 산타크루즈 도미니칸 병원 암병동 간호사로 활약했다. 현재 화이브 브랜치스 한의대 교수(한의학 박사)와 글로벌어린이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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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례(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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