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날씨 탓인지 시절이 어수선한 탓인지, 어둡고 침침한 날들이 계속되다 보니 작년 이맘 때 우울한 기분으로 시청했던 영화 한 편이 떠오릅니다.
<검은 사제들>의 배경은 활기찬 명동의 밤거리 뒤편, 어둡고 침침한 골목길 옥탑방입니다. 그곳에는 악마에게 몸을 빼앗긴 ‘영신’이라는 소녀가 살고 있고, 영화는 그녀를 구하려는 두 사제와 악마의 싸움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악마는 무려 5천살로, 인류 역사의 그늘 뒤에 숨어 끔찍한 일들을 해왔지만 결코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아 왔습니다. 악마가 그 존재를 들키면 인간들이 신을 믿게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 무서운 녀석이2014년의 대한민국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소녀에 깃든 악마의 존재가 알려졌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며 무관심하기도 하고, 늘 어둠은 있어왔다며 자조하기도 하며, 너무 두려운 나머지 현실을 부정하며 도망치기도 합니다.
혹자는 악마와 싸우려는 김 신부와 최 부제를 비난하며 왜 일을 크게 만드냐고 화를 내기도 합니다. 악마도 역시 그들과 같은 말을 합니다. ‘모른 척 살아라. 바깥에 있는 인간들처럼,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아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제는 악마와 끝까지 맞서 싸웁니다. 그들이 슈퍼맨이어서가 아닙니다. 두려움 속에서도 옳은 선택을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개인들은 미약합니다. 미약한 자신을 알기에 세계의 불합리를 되도록 외면하며 살아갑니다. 다행스럽게도 거대한 악은 대개 어둠 속에 숨어 있으므로, 우리와 정면으로 맞닥뜨릴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영화 속 악마도 그런 우리의 나약함을 조롱하며 절망시키려 합니다. 인간도 짐승과 같다고, 절대 자기보다 큰 놈에게 덤비지 않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지만 두 사제는 외칩니다. 신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우리 인간은 인간을 긍정한다! 결국 세상의 빛을 끄러 왔다는 악마는 패배하고 맙니다. 평범한 인간이 무서운 악마에 맞서기 위해 필요했던 것은 연약한 자신을 알면서도 거대한 악에 저항하는 용기였고, 그것이 인간의 가장 위대한 본성이었던 것입니다.
정말일까요? 영화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말입니다. 자신있게 나도 인간을 긍정한다고 외치기 힘든 날입니다. 어서 비가 그쳐야 할 것 같습니다.
<
이현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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