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쯤, 지금은 아기 아빠가 된 큰 아들이 너댓살 되었을 때 ‘아기 공룡 둘리’라는 TV 만화영화가 대단히 인기였다. 서로 싸우던 고만고만한 세아이들이 이 만화영화만 시작하면 TV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조용히 눈도 떼지 않았다.
내 남편의 푸들 이름은 둘리이다. 아기 공룡 둘리같이 생겨서 지은 이름은 아니고 개를 하도 여러 마리 키웠던지라 딱히 적당한 이름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니까 둘리라고 혼자 부르기 시작했다.
남편의 개 사랑은 자식 사랑 이상이다. 반면 어릴 적 큰 개에게 공격을 당했던 트라우마가 있는 나는 무조건 개를 싫어했다. 5년 전 남편은 생후 3개월 된 둘리를 선물로 받았다며 양복 주머니에 넣어서 집으로 데려왔다.
내가 개를 싫어하니까 사왔다고 하면 난리를 부릴 테니 선물받았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또 혼자 계신 어머니의 적적함을 덜어줄 수 있다는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댄다. 둘리는 어머니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잠도 같이 자고 어머니가 잡수시다 입으로 둘리에게 주면 다 받아 먹었다.
우리가 가는 곳에는 둘리도 함께 다녔다. 빨간 서비스견 조끼에 명찰과 목걸이를 하고 휠체어에 앉으신 어머니 무릎에 앉아있으면 어디든지 무사통과였다.
남편도 개에게 지극 정성이였다. 밥 먹이고 목욕시켜주고 새벽 2-3시에 낑낑대면 소변을 보도록 데려나가고... 반면 나는 개에 관한 한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둘리는 내 곁에도 오지도 못했고 어쩌다 개에게 손이 닿으면 온몸이 따겁고 알러지 증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작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니까 상황이 달라졌다.
둘리가 기운이 하나도 없고 밥도 잘 먹지 않는 것이다. 하루종일 어머니 침대에 앉아서 풀이 죽어 있었다. 개가 먹지도 않고 애정 결핍증상을 보이니 갑자기 불쌍해 보였다. 어떻게 하면 둘리가 밥을 먹을까 하고 소고기 살코기를 사서 끓여서 주니 아주 잘 먹었다. 처음엔 조금씩 살코기를 주다가 급기야 양이 점점 늘어났다.
둘리는 이중언어를 이해하는 영특한 개이다. 아주 영리하고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 내가 태어난 지 일주일 되는 손자도 귀엽지만 둘리도 귀엽다고 칭찬을 하면 아들은 “엄마, 개는 다 그런 거예요”라고 핀잔을 준다. 둘리에게 손도 대지 못했던 내가 지금은 출퇴근길에 내 무릎에 앉혀서 데리고 다닌다. 털도 깎아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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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례(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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