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은 미주한인 역사상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해 4월29일 발생한 LA 폭동으로 한인들은 남의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설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반년쯤 후인 11월3일 한인사회는 첫 연방하원의원 탄생이라는 경사를 맞는다. 김창준 다이아몬드 바 시장이 연방하원 선거에서 승리해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폭동으로 실의에 빠져있었던 한인들은 단지 동족이라는 이유로 그의 당선을 내 일인 듯 기뻐했다. 침체되어 있던 한인사회에 한줄기 햇살처럼 반가운 사건, 희망과 자부심을 준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의 선거운동 내막을 들여다보면 좀 씁쓸한 측면이 있었다. 백인이 주류인 지역구에서 ‘코리안’ 이미지가 너무 부각되면 유권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 있다는 조심성이 작용했다. 선거운동 본부 측은 한인사회와 한국기업들로부터 기금을 후원받으면서도 한인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취재 나간 기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최초의 한인 연방하원의원 탄생 가능성에 대한 한인사회의 관심이 지대한 만큼 한인언론들은 선거 기간 내내 밀착취재에 임했다. 하지만 막상 선거 캠프에 나가보면 한인 기자들은 뒷방으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눈에 띄지 않게 취재해 달라는 부탁 아닌 부탁이었다. 폭동 때와는 다르지만 이 역시 남의 나라에서 소수계로 사는 설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한인사회는 4.29 폭동 같은 설움을 다시 겪지 않도록 그리고 김창준 의원이 물러난 후 19년 만에 다시 연방의회 안에 한인대표를 둘 수 있도록 정치력 신장을 도모했다. 연방하원 34지구 보궐선거에 로버트 안 후보가 도전했다. 아쉽게도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4개월 여 선거운동을 통해 중요한 자산을 남겼다. 한인으로서 당당한 자부심 그리고 한인사회의 결집력이다.
이번 선거에서 안 후보나 한인 유권자들은 ‘코리안’으로 당당했다. 그만큼 미국사회에서 우리의 입지가 강해졌다는 말이 된다. 안 후보는 코리안 2세로서 소수계 이민자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는 점을 내세웠다. 한인 유권자들은 떼를 지어 조기 투표소로 향하며 한인사회의 저력을 과시했다. 25년 전 선거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누를 수 없다.
1992년 당시만 해도 ‘미국은 용광로’ 사회였다. 모든 인종 문화가 녹아 하나의 미국으로 거듭나는 사회로 인식되었다. 지금은 샐러드 보울 사회로 인식된다. 각기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살리면서 조화를 이루는 다양성 존중의 사회이다. 한인은 한인으로서 미국사회에 공헌할 수가 있다.
선거는 끝나고 연방의회 입성은 좌절되었지만 이번 선거의 경험은 두고두고 한인사회의 자산으로 남을 것이다. 한인들의 투표 열기는 주류사회의 주목을 끌었다. 주류정치인들도 앞으로는 한인 표에 좀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정치력은 신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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