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년을 맞아 서울에 체류하는 딸도 보고 매 3년마다 한국 의학협회가 주관하는 국제 종합학술대회에 참석도 할겸 최근 서울에 한 2주간 머물다 왔다.

딸애가 방을 얻어 강아지 한 마리와 기거하고 있었는데 강아지는 낮선 나를 보고도 통 짖지를 않았다. 알고 보니 어느 수의사가 버려진 개들을 모아 임상경험을 쌓기 위해 성대 수술을 시행한 뒤 동물보호소로 넘긴 것을 딸애가 데리고 온 것이었다.

의사소통은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모여 사는 삶 속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적 요소 중 하나다. 소통을 통해 사람은 사람답게 되고 동물은 동물답게 된다. 의사소통은 처음 소리로 듣는 청각언어로 시작했는데 문자가 만들어진 후 글로 소통을 하는 문자언어가 유행했다.

최근에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청각과 시각이 골고루 섞인 TV, 컴퓨터, 스마트 폰 등의 영상언어가 주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영상언어의 등장이 대화언어를 서서히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고 찡그리고 떠들어대는 감정의 실질적 체험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금년 의학 학술대회의 두가지 큰 주제는 미래의학과 건강수명이었다. 미래의학은 인공지능에 관한 것이었고 건강수명과 관련해서는 한국 의학협회가 국민들에게 건강 십계명을 선포했다. 인간의 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지만 건강 수명은 실제 수명보다 거의 10년 정도가 짧다. 10년 동안 골골 앓다가 죽는다는 사실이다. 선진국들은 두가지 수명 사이를 좁히기 위해 사회적, 경제적, 의학적 문제점들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다.

건강 십계명은 10가지의 건강정보들로 되어 있다. 주로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미세먼지 등 환경에 잘 대처하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면 건강수명이 늘어난다는 내용이다. 한국의 저명한 전문가들 30여명이 머리를 맞대고 3년 동안 오직 연구실적과 의학지식 그리고 경험에 의거해서 만든 내용이니 인터넷 등에 나도는 일회적이고, 근거가 희박하며, 증명이 안 돼 불확실한 정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건강 십계명 중 거의 절반은 스트레스와 불안에 대한 관리와 대처 방안과 관계가 있었다. 적절한 스트레스와 불안은 삶의 활력소이지만 과도해 지면 만병의 근원이 된다. 또 하나는 인간의 얼굴 대화를 줄이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에 대한 정보였다. 이들 기기의 장기간 사용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신체적으로는 옥외 활동시간을 줄여 비만과 성인병을 유발하고, 정신적으로는 교감신경계를 장시간 자극시켜 긴장감과 각성상태를 유지함으로써 뇌가 쉬지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불안, 수면장애, 행동장애를 보이게 된다.

안면 대화를 계속 줄이는 소셜네트웍의 거물인 페이스북이 최근 세상을 더 가깝게 만들겠다며 인간 사회에 도전장을 냈다.

이에 맞서 우리는 최소한 식사를 할 때만이라도 스마트폰 사용을 금하자. 어른들은 자녀들 앞에서 스마트 기기 사용을 되도록 줄이는 방식으로 본을 보이자.

한편 인간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극복하고, 부담 없는 대화의 한 방편으로 애완견을 소유한다. 그런데 시끄럽다고, 이웃에 방해가 된다고 성대를 잘라버리는 것은 동물학대는 물론 동물과의 안면대화까지 없애 버리는 행위이다.

전철, 버스, 병원 응급실 내에서도 스마트폰에 시선이 박혀 있던 반백 노인들의 무표정, 그리고 짖지 못해 입에 거품이 일던 가련한 개의 모습이 아직도 내 시야 속에 맴돌고 있다.

<천양곡 /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