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았다. 내가 잡은 게 아니라 안쪽에서 문고리를 밀고 빼꼼히 기다리고 있다.
지난 가을 유럽여행 때 감기가 들어 기침이 나오더니 가래까지 올라왔다. 한달 이상 괴롭혀온 기침 가래가 없어지더니 가끔 마른 기침이 계속 되고 5월 들어 다시 기침 가래가 나왔다. 면역력이 약해진 나이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사 권유로 X-Ray를 찍었다.
일주일만에 연락이 와 폐에서 뭔가 검은 게 보이니 4일 뒤 CT촬영을 해야 한다고 했다. 드디어 나도 올 것이 온 게 아닐까 불안한 마음이 엄습한다. 각오해야지. 초기라면 치료를 해야 하나? 아니 방사선에 뭐에 고통만 더 하고 사람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시간이 갈테니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다 가야지. 그런데 그 마지막 고통은? 그게 너무 두렵다.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마약도 안 듣는다는데...
이만큼 살았으니 나이답게 의연히 대처하자. 아니 오진일 수도 있지 않나. 나흘이란 시간이 그렇게 느리고 길 수가 없어 견디기 어렵다. 대범한 척 시간을 보내며 일상 생활을 더 즐겁게 보내려 애쓰고 CT를 찍으니 이틀 후 흉부외과 의사가 연락을 할 거란다.
의사 한번 보려면 예약도 힘들고 보통 한달 뒤로 잡아 주는데 이틀 후라니 폐암이 확실하다. 폐암은 예후가 나빠 5년 생존률이 20%도 안된다는데... 난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모든 게 내 증상과 일치한다. 온몸의 피로감, 기침 가래.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은데... 무엇부터 정리를 해야 하나.
이제 치료를 하든지, 포기를 하든지, 난 거의 일상 생활에서 손을 놓게 될 것이다. 아직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는데 선고를 받으면 맥이 쭉 빠져 아무것도 못할지도 몰라. 20년 전 여성의 창을 썼고 이제 다시 친정에 온 느낌으로 ‘여성의 창’을 쓰겠다고 대답해 놓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 시작 전이니 못하겠다고 할까? 그냥 투병하면서 변화하는 몸과 마음을 담담히 써 나갈까?
어쩌면 끝나기 전에 못 쓰게 될지도 모르잖아. 숨 한번 크게 쉬고 하늘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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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자씨는 북가주 라디오 서울 기자를 시작으로 한인 T V .KTN.에서 방송국장과 한인 문화센터장으로 활동했으며 본국 한국일보와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한 해외동포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숨겨논 이야기’를 비롯해 다수 수필도 지상에 발표했으며 시인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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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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