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덜란드서 시행 중인 ‘새로운 치매요법’ 주목
▶ ‘버스 외출’ ‘바에서 한 잔’ 등, 프로젝터 이용 시뮬레이션

난폭해졌던 중증 치매환자 윌리 브리겐(89)이 천장에 프로젝터로 자연경치가 펼쳐지고 음악이 흐르는 방에서 안정을 되찾고 있다. <뉴욕타임스, 일비 느지오키크트지엔>

중증 치매환자인 남편 얀 포스트를 요양소로 면회 온 아내 카타리나가 프로젝션으로 마련된 ‘암스테르담 버스정류장’에서 남편을 만나고 있다.

노인들의 유년시절을 연상시키는 지나간 시대의 소품들이 장식된 방.
“우리 길을 잃었나봐”라고 트루스 움스(81)는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친구 애니 아렌슨(83)에게 말했다. “운전기사가 잘 알겠지”라고 애니는 운전석에 앉은 루디 텐 브링크(63)에게 조크를 던졌다.
세 사람은 네덜란드 동부의 한 요양원에 거주하는 치매환자들이다. 나무가 늘어선 네덜란드 한적한 시골 길을 달리는 그들의 ‘버스 라이드’는 3개의 비디오 스크린을 통해 하루 몇 차례씩 플레이되는 시뮬레이션이다.
이 같은 시뮬레이션은 네덜란드 전국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개척하고 있는 비정통적 치매요법의 한 부분이다. 유년의 기억, 마음을 달래주는 음악, 가족 맺기 등으로 환자의 심신을 진정시켜 편안한 휴식을 주면서도 인지력을 자극하는 방법으로 치매환자들을 병상에 눕혀둔 채 투약에 의존하면서 때로는 신체적 제한을 가하는 정통요법을 지양하려는 시도다.
“스트레스가 감소될수록 효과가 좋다”고 네덜란드 치매치료의 최고 권위자의 한명으로 꼽히는 에리크 쉐리더 박사는 말한다. “스트레스와 불편감을 낮출 수 있다면 곧장 생리적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나들이’ 시뮬레이션은 환자들에게 함께 모이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버스를 타고 외출하거나 바닷가에 놀러가는 가상현실에 함께 참여하며 이들은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버스를 탔을 때나 바닷가에 놀러갔던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며 일상을 떠나 ‘미니 할러데이’를 갖게 된다.
뇌기능의 급격한 저하를 가져오는 치매는 한 인간의 기억과 인격을 도둑질 할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에게서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가고 인내심과 재정까지 바닥나게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 64세 이상 노년층 인구 320만명 중 8.4%인 약 27만명이 현재 치매를 앓고 있으며 향후 25년 이내에 이 숫자는 두 배가 될 것으로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최근 네덜란드 당국은 치매 환자들에게 요양소 거주보다 집에서의 치료를 권장하고 있어 대부분의 치매환자들은 자택 요양 상태다, 공공기금을 받아 민간이 운영하는 요양시설엔 중증 환자들을 받고 있다.
네덜란드가 치매 치료에 대해 의학적 접근을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부터였다.
“80년대엔 치매 진단을 받으면 다른 환자들과 똑같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말한 전문치료사 출신의 일세 아크테르베르그는 ‘스노젤 룸’의 개척자다. 스노젤 룸은 환한 빛과 향기 속에서 마사지와 음향치료를 받는 방으로 스트레스를 주는 일반 병원의 병실에선 꽉 막힌 상태였던 감정이 편안히 흐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요법인데 요즘 네덜란드의 많은 치매 시설에서 사용하고 있는 테크닉 중 하나다.
암스테르담의 한 요양소. 시내버스 정류장을 본떠 만든 대기실에서 98세의 얀 포스트는 아내 카타리나 포스트를 만나 키스를 나눈다.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얀에게 기억이 문득 돌아오는 시간은 불과 10초, 그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자신의 병실)을 잃을 까 걱정한다. “70년 결혼생활을 함께 한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고 있답니다”라고 한 주에 몇 본씩 면회오는 92세의 아내는 말한다.
이들은 시설 내 공동구역인 ‘암스테르담’ 카페에서 한잔을 마시며 이야기도 나눈다. 카페 시설은 가상이지만 술과 조크와 함께 부르는 노래들은 ‘생생한’ 진짜다.
의료진과 학계는 이 같은 환경 요법들이 치매환자의 보다나은 생활엔 도움을 준다고 믿지만 그 장기적 효과에 대한 확실한 증거로 보기는 힘들다. 치료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요법으로 인해 환자들의 투약이 줄고, 난폭해질 경우 신체적 제한도 적어졌다고 의료관계자들은 말한다.
치매 요양소 ‘아인트호반 홈에 거주하는 ’89세 중증 치매환자인 윌리 브리겐은 때로 화가 폭발하면서 난폭해진다. 종래엔 진정제를 투여하거나 손발을 묶는 등 신체적 제한 요법을 썼지만 이곳에선 천장에 프로젝터가 있는 방으로 옮겨 침대에 누워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평화로운 자연의 풍광을 보게 하면서 진정시킨다. 이 방은 브리겐이 어린 소녀였었던 ‘지나간 시대’를 연상시키는 가구와 소품들로 장식되어 있다. 다이얼 전화기, 커다란 타이프라이터 짙은 갈색 책장에 꽂힌 책들, 새로 꺾어온 들꽃…병실이 아닌 옛 고향집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환자들을 6~10명씩 한 그룹으로 나눠 ‘가족 맺기’ 요법도 있다. 각자 방을 갖고 사생활은 보장 받지만 공동 구역인 리빙룸과 부엌에 모여 감자 깎기나 샐러드 씻기 등 가사를 분담하기도 하고 우울증을 날려 보내는 댄싱타임을 갖기도 한다.
“정상적 일상을 만들어주는 것은 이처럼 사소한 일들”이라고 ‘버스 라이드’ 시뮬레이션을 제공하고 있는 도틴쳄의 요양소 간호사 파멜라 그루트얀스는 말했다.
<
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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