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직한 오르간 선율이 흐르는 실내에 하나씩 촛불이 켜졌다. 마약으로 숨진 10대 아들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애절한 손길이, 임종이 가까워진 아버지를 생각하는 중년 아들의 걱정스런 손길이, 56년 해로한 아내를 먼저 보내고 그리워하는 노인의 쓸쓸한 손길이, 그리고 실직과 이혼, 파산과 질병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떨리는 손길이 차례차례 촛불을 밝혔다.
흐르는 눈물과 조용한 기도의 속삭임으로 가라앉았던 어두운 실내가 수 십 개의 촛불이 켜지면서 환하게 밝아졌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와 힐링, 슬픔과 고통을 이겨낼 용기와 희망이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가닿았다.
‘블루 크리스마스’ 예배가 금년에도 밤이 가장 긴, 겨울의 첫날인 지난 21일 동지를 전후해 시작되어 연말까지 미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10여년 넘게 계속 확산되어 온 미국의 크리스마스 풍경 중 하나다.
앤디 윌리엄스가 크리스마스는 “한 해 중 가장 멋진 때”라고 속삭이고, 상가와 미디어가 ‘메리 크리스마스’를 강요하듯 부추겨대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 모두가 다 즐겁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사실상 크리스마스 시즌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힘든 시기일 수 있다.
이 무렵이면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못지않게 많은 공감을 받는 노래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블루 크리스마스’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정답고 아름다운 뉴잉글랜드의 완벽한 할러데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면 ‘블루 크리스마스’엔 사랑하는 사람이 없이 보내는 우울한 크리스마스의 아픔이 담겨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맞는 첫 크리스마스가 가장 우울한 크리스마스로 꼽힌다. 미 질병통제예방국 데이터에 의하면 12월과 1월 할러데이 시즌이 한 해 중 가장 사망률이 높은 계절이며 지난해 이 기간 사망자는 25만 명 이상으로 집계된다. “그 가족들에겐 이번 크리스마스가 가장 힘든 날”이라고 정신과 전문의 켄 덕워스는 USA 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들뜨고 떠들썩한 명절 무렵에 외로움·상실감·소외감이 더욱 심해지는 ‘할러데이 블루스’가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고 덕워스는 지적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나 실직만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는 “온 가족이 화목하게 즐거워야 한다”는 현실과 다른 기대치에 대한 압박감으로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시기라는 경고다.
다행인 것은 할러데이 블루스가 자살률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12월의 자살률은 1년 중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아마도 가족과 이웃이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선의의 요소 때문일 것이라고 덕워스는 말한다.
블루 크리스마스 예배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일반 주민들도 많이 참석한다는 이 예배는 설교와 기도보다는 상처 입어 “주위의 즐거움에 동참하기 힘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너무 아프다, 너무 힘들다’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쏟아내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 받으며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담당 목회자들은 말한다.
힘든 사람들은 늘어나고 마음의 평화는 줄어드는 세상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를 위해 교회가 할 수 있는 따뜻한 커뮤니티 서비스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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