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오)재섭 사모
▶ 고 김순명목사 부인, 자녀교육·봉사 모범

고 김재섭 사모와 고 김순명 목사 부부의 1990년 한영해설 성경 출판기념회 당시 모습.
“어머니는 온화하고 인내심이 강하며 목회를 했던 아버지를 평생 묵묵하게 내조하면서 자신이 늘 희생하는 분이셨습니다”
지난 달 29일, LA에서 83세에 별세한 김재섭 사모의 장남 김동조씨는 “미주크리스찬신문을 발행하고 전국 순회목회를 하면서 한글교육과 한영성경 및 한영찬송가 발행에 힘쓴 부친 김순명 목사의 사역은 모친의 헌신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김재섭 사모는 1937년 8월24일 제주도 추자면 신양리에서 아버지 오전태씨와 어머니 김길성씨 사이의 4남2녀 중 막내로 출생했다. 1959년 서울사범을 졸업하고 둘째 오빠인 국제구호기구 ‘월드비전’의 오재식 전 회장 후배의 소개로 김순명 목사와 만나 1962년 12월8일 결혼했다. 1973년 수원중앙침례교회에서 전도사 사모로 봉사하고 1974년 송탄중앙침례교회에서 담임목사 사모로 봉사하다가 1978년 가족이민으로 미국에 건너오게 됐다.
이때부터 바야흐로 본격적인 미국 목회의 길로 뛰어든 남편 김순명 목사가 1978년부터 애리조나 투산, 시에라 비스타, 피닉스, 텍사스 샌안토니오의 개척교회 목사로 시무할 때 김재섭 사모는 자녀들을 돌보며 목회자 사례비도 없었던 남편의 사역을 위해 헌신하게 된다.
LA시검찰 한인범죄피해자보조 프로그램을 1993년에 창설하고 운영하면서 한인사회에도 잘 알려진 김동조씨는 “아버님이 애리조나의 개척교회를 위해 불철주야 일하실 때 어머니를 도와 중학생 신분으로 밤에 청소를 하면서 생활비를 버는 등 가족의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1982년 LA로 이주해 1983년부터 미주크리스찬 신문을 발행한 김순명 목사의 문서선교 사역을 돕기위해 김재섭 사모는 1983년 LA기독교서적센타를 운영하기 시작해 1995년까지 운영을 지속했다.
게다가 김재섭 사모는 가난한 신학생들에게 무료로 신학서적 및 교재를 주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서점은 늘 적자에 허덕일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건강도 돌보지 않고 깡통밴을 타고 미 전역을 순회하며 이단종파 세미나 및 부흥사역을 하던 김순명 목사는 1992년 2월17일 텍사스주 킬린에서 설교를 마치고 자신이 몰던 차안에서 순직하고 시신의 장기는 기증하게 된다. 김재섭 사모는 이때부터 남편이 운영하던 미주크리스찬신문사 사장을 1년여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사모는 1978년 린다비스타 신학교, 1995년 골든게이드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1992년부터 2019년까지 에버그린 선교교회에 출석하며 사모로 봉사했다.
김재섭 사모는 남편 김순명 목사와의 사이에 장남(동조),장녀(수연),차녀(수옥)를 두었으며 4명의 손자와 2명의 손녀가 있다.
<
박흥률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