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핸슨의 영웅은 이중첩자의 대명사인 킴 필비였다.
필비는 동서냉전이 극에 달했던 1950년대 영국 해외정보국의 최고위 간부로 재직했던 러시아의 ‘두더지’로 정체가 들통나기 직전 모스크바로 망명했던 인물이다.
핸슨은 러시아 접선책을 통해 KGB(현 SVR의 전신)에 보낸 서신에 "열네살 때부터 필비를 동경해 왔다"고 털어놓고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말년에 러시아로 망명해 그 곳의 첩보원 양성소에서 강의를 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소망을 피력했다.
1944년 4월 시카고 경관의 아들로 태어난 핸슨은 녹스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며 러시아어를 익혔고 노스웨스턴대 치대를 다니다 경영학으로 방향을 선회, 71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73년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획득한 그는 아버지의 도움을 얻어 시카고 경찰국 회계담당자로 일하다 76년 32세의 신참요원으로 연방수사국(FBI)에 합류했다.
평소 말이 없는 편인데다 지극히 종교적인 인물로 알려진 그는 표면적으로는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요원이었으나 내심 나이 어린 상사들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같은 개인적인 감정을 서신에 담아 극비 정보와 함께 러시아측에 전달했고 이중 일부가 KGB내 미국인 정보원의 손에 들어갔다.
핸슨은 평소 러시아 첩보부에 박혀 있는 미국측 두더지에 의해 자신의 정체가 노출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는데 최악의 시나리오가 들어맞은 셈이다.
필비 못지 않게 조지 패턴 장군을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진 그가 이중삼중의 보안망을 뚫고 이중첩자로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칼하게도 FBI에서 받은 스파이 훈련 덕분이었다.
그는 배운 것을 철저히 응용, 접선 상대가 정시에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을 경우 곧바로 접선 자체를 포기했고 자신의 ‘부업’에 관해 철저하게 입을 다물었다.
가톨릭 계통 여학교 교사인 아내 버나데트 보니 와크와의 사이에 6남매를 거느린 그는 더할 수 없이 자상한 가장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들과 야외로 나갔고 주말마다 온 가족이 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평범하고 친절한 이웃이었던 그는 요원생활 10년 차로 접어들던 85년 미국내 소련 첩자에게 접근, 거래를 시작한 후 극비 정보에 대한 대가로 현금과 다이아몬드를 요구했다.
아슬아슬한 고난도 곡예로 지난 15년간 그가 잠재적 ‘적성국’으로부터 벌어들인 수입은 55만달러의 현찰과 5만달러 상당의 다이아몬드가 고작이었다. SVR은 러시아내 은행에 그의 몫으로 80만달러의 현금을 예치해 놓았다고 통고했지만 정보 베테런인 핸슨은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미끼를 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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