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진주한 미군이 소를 탄 남편을 앞세우고 고삐를 잡은 아내가 뒤따르는 모습을 보고 의아해 물었다. “당신은 타고 아내를 걷게 하다니요?” “우리의 오랜 풍습이니 어쩔 수 없소!” 남편의 대답이다. 귀국했던 그가 6.25 후 다시 그곳을 찾았더니 아내를 태워 앞세우고 남편이 고삐를 잡고 뒤따르는 모습을 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신도 이젠 제법 아내를 위해줄줄 아는구려” 그러나 농부는 “천만의 말씀이요, 당신들이 전쟁통에 어찌나 많은 지뢰를 묻어놨는지 안심하고 다닐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안전한 방법으로 이렇게...” 우리를 측은하게 하는 미국인의 이런 비아냥은 ‘여성의 달’인 3월에 아내를 다시 한 번 쳐다보고 생각하게 한다.
이런 조크가 사실이나 되는 듯 가정에서 아내들이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다는 가정상담소의 통계는 믿기지 않는다. 동의받을 수 없는 풍속에 대한 향수심에서 비롯된 이성을 잃은 남편의 폭력은 힘든 이민생활에서 위안을 받아야 할 아내를 더욱 지치게 만들고 어떤 명분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하는 미국사회여서 더욱 믿기 어렵다.
뉴욕5번가를 걷다 백화점엘 들어가면 대부분의 것들이 여인을 더 아름답게 꾸미고 편리하게 해주기 위한 상품들인데 놀란다. 집 장만을 위해 주인 안내로 내부 구경을 하다 부엌에 들어서면 유난히 설명이 길어짐을 알게 된다. 부엌에 아내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고 매매는 아내의 동의가 필수적이어서 남편 혼자 집을 보려고 할 때 사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친구들과 골프를 치려면 즉답을 못 얻는데 이는 퇴근후 곧장 집으로 달려가 아내의 허락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내에 대한 그들의 끔찍한 배려를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곳이 우리가 이상향이라고 믿고 찾은 나라이고 그러기에 우리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책임과 의무를 함께 지며 부부라는 이름으로 사는 곳에 이견과 갈등은 뒤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상호성이 무시된 봉사를 강요하고 아내를 설득하는데 힘이 사랑에 선행한다고 믿는다면 이는 남편의 허약함을 보이는 것이고 자신의 인덕과 이민의 꿈을 파괴하고 가정 깊숙히 간섭하는 미국법을 어기는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남자의 자비에 호소하기 보다는 여성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지켜야 함은 아내에게는 현실적 필요이고, 아내를 아름답게 가꾸어 앞세움에 즐거움을 느끼는 성숙함은 남편에게는 이상적 필연이다. 서로의 인격이 존중되는 민주주의의 원칙은 가정에서도 생활화되어 지켜져야 할 규범인 것이다.
백 만 옥(전 고교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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