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지금쯤 한국에선 고향 길 오가는 이들로 귀성전쟁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기다시피 움직이며, 그나마 서다 가다를 반복하는 자동차의 행렬로 꽉 막힌 도로가 절로 떠오른다. 그 도로에 갇혀 있을 땐 갑갑하다 못해 몸살이 날 지경이었는데 그마저도 그리운 기억으로 떠오르는 걸 보면 인간의 정서란 대체로 때와 장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인가 보다.
이곳에 온 후론 명절 때 한 번도 귀국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명절에 혼자 떨어져 있는 혈육이 안쓰럽게 느껴지는지 번갈아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한다. 여기 생활에 묻혀 비교적 덤덤하게 지내던 나는 오히려 그 안부전화 때문에 가족 생각이 간절해지곤 한다.
어제는 명절치레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텐데 어떻게 틈을 냈는지 작은 언니가 전화를 했다. 언니, 괜찮아? 몸이 약한 언니가 무리를 할 것이 걱정 되어 나도 모르게 그 말부터 나왔다.
시아버지 형제가 7남매에 남편 형제가 7남매, 게다가 시할머니까지 계신 집으로 시집을 간 언니는 명절이 다가오면 그 한 달 전부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란 것인데, 명절 내내 잠시 앉을 짬도 없이 ‘음식 만들고 상 차려내고 치우고’를 반복하니 그럴 만도 했다.
언니들이 결혼을 하기 전에는, 명절은 그냥 즐겁고 들뜨고 기다려지는 연휴였다. 종가집 맏며느리인 어머니의 수고를 보았지만 워낙 내색을 하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하는 일 정도로 알았다. 언니들로부터 ‘제일 반갑지 않는 날이 명절’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여자들의 명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며칠에 걸쳐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며 손님 접대를 하는 여자들에겐 명절이 명절이 아니라 노동절이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시댁으로 가는 여자들은 일할 준비 하고 가고 남자들은 먹고 쉴 준비하고 간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가족을 위해’ 라는 포장지를 씌우지만 힘든 것은 힘든 것으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한쪽은 앉아서 놀며 받아먹는데 하루 종일 부엌에서 동동거리는 몸과 마음이 즐거울 리 없을 것이다.
21세기 운운하지만 명절치레 한 가지만 놓고 봐도 한국 남자들의 관행과 사고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남자와 아이들만의 명절이 아니라 여자들도 즐기는 명절, 보름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함께 어우러지는 명절이 될 날은 언제일까. 어머니와 언니들이 행복한 추석을 보내기를 비는 마음이 한층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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