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가 발생한지 2년이 지났지만 미국엔 여전히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온 몸에 중무장을 하고 두 눈을 부릅뜬 ‘람보’의 모습이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적이 발견되면 언제든지 공격을 가할 태세다.
그 날 일이 떠올라 요즘도 밤마다 깬다 9.11테러 당시 뉴욕 시장이던 줄리아니가 11일 그라운드 제로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한 말은 그 날의 테러로 인한 미국의 충격을 대변한다.
그 충격으로 지금 미국인들은 잔뜩 움추린채 외국인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외국인에 대한 곱지 않은 시각은 경계심을 넘어 배타적이기까지 하다. 그 바람에 꼬박꼬박 꼬박 세금 내며 성실하게 사는 미국 내 비시민권자들은 아무 잘못도 없이 불안하다.

해외에 나갔다 돌아오는 공항에서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을 당해도 꾹꾹 눌러 참을 수밖에 없다. 본국에 좀 오래 체류했다는 이유로 영주권이 박탈되고 사소한 사건에 연루돼도 혹시 ‘추방’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비자나 영주권 수속이 기약 없이 늦어져도 왜 그런지 이유도 물어보지 못한다. 누가 ‘반미’ 소리만 해도 행여 미국인들의 심기를 건드릴까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대외적으로는 어떤가. 9.11테러 이후 부시대통령이 이끄는 미국의 위력은 더욱 커졌다. 이제 미국과 정면으로 상대할 나라는 지구촌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거의 모든 나라가 미국의 눈치를 살피며 되도록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모두들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말을 안 해 그렇지 미국에 대한 반감이 차 오르고 있다. 겉으로야 모두들 협력하는 모습이지만 안으로는 ‘왕따’ 당하는 기분이다.
미국은 테러의 ‘피해자’다. 위로와 협력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마치 가해자인양 취급을 받고 있다. 테러 응징을 명분으로 한 전쟁 후에도 지구촌에는 연일 증오와 갈등에 의한 폭력과 보복이 난무한다. 그리고 그 조준의 끝은 늘 미국을 향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바로 미국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일방주의’ 노선이 미국을 그렇게 고립시키고 있다.
어느 나라나 자국의 이익과 안전을 위해 총력을 다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미국보다 더하면 더하지 결코 덜한 나라는 없어 보인다. 미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불만은 극히 자국 이기적 소산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미국에만 불만이 집중되고 있다. 그건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맏형’ 역할을 하고 있고, 그런 만큼 바라는 기대가 큰 탓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손해본다는 심정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미국이 ‘세계의 리더’로서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은 미국의 책무이고 운명이다. 힘세고 가진 자가 너무 인색하면 존경받을 수 없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9.11테러 후 2년간 미국의 변화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 자유롭고 여유 넘치는 분위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말한다. 법만 지키면 지금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 말은 맞다. 당연히 법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인가. 법만 지키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가.
아니다.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은 법을 지키지 않아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목이 졸리듯 ‘자유’가 점점 제한되어 가는 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한다.

누가 뭐래도 미국의 상징과 전통은 자유다. 자유가 없었다면 지금의 미국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유를 찾아 모여든 사람들이 건국하고 발전시키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지금도 세계 거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정신적 물질적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모여들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오는 자금과 문화와 노동력이 지금 미국을 부강하게 하고 있다. 따라서 그 행렬은 미국의 젖줄이고 생명력이다. 그들이 등을 돌린다면 미국의 미래는 없다.
미국은 지금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극도의 긴장 속에 적진을 수색하는 병사처럼 눈에 핏발이 서 있다. 누구든 조금만 이상하면 쏘아 버릴 기세다.
이해는 간다. 이유야 어떻든 그렇게 당하면 누구든 감정이 이성보다 앞설 수밖에 없다. 지난 2년 간의 세월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 두 차례의 보복성 전쟁도 치뤘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감정을 누르고 이성으로 판단을 해야 할 때이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미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반감이 왜 높아지는 지 파악해야 한다.
굳이 힘을 과시하지 않아도 힘으로 미국에 맞설 상대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힘만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는 지났다. 도덕적으로 정의롭지 않으면 세계인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증오는 증오를 부른다. 이제는 증오를 거둘 때다. 잊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유롭고 여유롭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