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 너 진짜 한심하다. 어떻게 그걸 까먹냐. 정말 나를 많이 혼내주고 싶다.
학교에서 하는 teaching 컨퍼런스에 인문대 대표 강사 중 한명으로 뜻밖에 선정이 되었다. 세시간이나 되고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나의 능력 밖의 일 같았다. 심히 부담이 되었지만 일단 하라고 했으니 해야지 하고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디렉터랑 준비모임도 몇번이나 하고 새벽 늦게까지 며칠에 거쳐 레슨플렌을 완성했다. 복사물까지 30 장씩 다 준비하고,이제 슬슬 자신감도 생겨 일주일 뒤면 잘 될꺼야 생각했는데..
아까 점심을 먹고 있는데 후배한테 전화가 왔다. 언니, 언니도 스피커 중에 한분이시네요. 잘 되가요? 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오늘 오니까 안내지에 써있는데요.
오늘?
그렇다. 그 컨퍼런스는 오늘이었다. 일주일 뒤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도 확신있게 다음주라고 달력에 써놓고 다른 일정도 다 조정하고 다음주에 남편에게 아이 픽업까지 부탁해논것이다. 놀래서 학교로 달려갔다. 이미 다른 사람이 진행을 하고 있었다. 10시 반에 시작인데 반 이상을 놓쳤으니 할말이 없었다. 티칭 센터 디렉터에게 갔다. 큰 사고가 있는줄 알고 걱정했댄다. 참가자들에게 가서 사과를 할까 했더니 그냥 조용히 사라지는것이 낫다고..하긴 오늘인줄 몰랐다는 것은 너무 황당한 변명이니까..디렉터는 그럴수도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괴로와하는 나를 다독여주었다.
부끄럽고 허무한 맘으로 터벅터벅 돌아오면서..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원래 계획성이 철저하고 수첩에 모든것을 적어놓는 사람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수첩이라는게 없어져버렸다. 애 둘을 낳으면 머리가 나빠진다고 들었는데 그럴수록 더 잘 적어놓고 주지시켜야 하는데 덤벙덤벙이 아예 생활화가 되어버렸다. 그러고나서 생각해보니 한국일보에 원고를 보내야 할 날인것이다.
원래는 이 컨퍼런스를 잘 마치고 그거에 관한 글을 다음주에 쓰려고 제목까지 정해놨었는데 도리어 이렇게 부끄러운 고백을 하게 되어버렸다. 모든 일은 ‘제 때’가 있다. 버스 지나고 손흔들면 소용없듯이 아무리 준비했어도 그 때를 놓치면 쓸모없는 것이다.
지금 나는 책상앞에 커다란 달력을 부쳐놓았다. 촌스럽다고 팽개쳤던 달력인데 이젠 안되겠다. 그리고 모든것을 적을 것이다. 그런데 다음주에 컨퍼런스가 있다고 표시해 놓은 동그라미가 심히 거슬린다. 그래도 지우지 않으련다. 적는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적어야함을 내 자신에게 일깨워주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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