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사우이라의 해변
<마라케쉬>
페즈에서부터 아틀라스 산을 끼고 마라케쉬 쪽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우리만을 위해 새로 포장 해 놓은듯한 도로에는 간혹 당나귀를 타고 유유히 가는 사람들뿐. 시간을 한도 없이 갖고 있는 사람들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부드러운 산등성이에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초목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양을 보라고 손가락질하고 있어 깜짝 놀라서 쳐다보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렇게 해서 지나가는 사람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으면 돈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아이구, 참! 기발하게 그런 생각은 어떻게 했어.
거의 저녁 무렵에 마라케쉬에 도착했습니다. 큰 대로가 여기저기 뻗쳐 있고 멋지게 보이는 아랍식 빌딩이며 마차를 끌고 관광객을 태우려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등 큰 도시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야자수가 늘어서 있는 고급 주택가는 정말 멋이 있어 보였습니다. 우리는 라마무니아라고 하는 아주 좋은 호텔에 묵기로 하였습니다. 지금은 다른 좋은 호텔도 여럿 생겼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라마무니아가 제일이었습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을 비롯한 유명한 사람들이 다 그곳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클래식한 옛날 호텔을 아주 품위있게 새로 개조했더군요. 내부의 여러 작은 분수에는 수많은 장미 꽃잎을 띄워 놓았고 영화의 세트장 같이 아름다운 실내의 정원이 있었습니다. 아랍식도 잘 해 놓으면 그렇게 아름답더군요. 방으로 가는 통로도 널찍하게 여유가 있었습니다. 욕실의 내부는 현대적이면서도 아랍식 정취를 살려 문은 정교한 조각에 칠을 한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손 닦는 얇은 수건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여러 번 만지작거렸습니다.
이건 분명히 이집트산 면이겠지. 최고로 치는 이집트산 면은 말할 수 없이 보드랍거든요. 면이 그렇게 보드라운지 놀랠 정도랍니다. 창 옆의 테이블에는 과일이 담겨져 있었고 창밖으로는 야자수가 있는 넓은 정원이 내다 보였습니다. 과연 품위가 있는 좋은 호텔답구나. 라마무니아에는 넓다란 정원과 수영장이 있는데 낮에는 호텔 손님들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프랑스 말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점심때에는 수영장 옆의 넓다란 마당에 뷔페를 차려 놓는데 모로코 요리, 프랑스 요리 등 종류도 많고 아주 잘 만들어 놓았더군요. 저는 마라케쉬에서 묵는 며칠간은 점심은 거기서 먹는 것이 그 좋은 호텔의 유지를 위하여 절대로 필요하다고 주장 하였습니다. 며칠 동안 아랍 음식만 먹었으니 속을 좀 달래는 의미에서였지요. 고급 주택가에 있는 레스토랑에서도 쉐프는 모로코 사람인데 프랑스 요리가 놀랄 만큼 훌륭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안내원을 앞세우고 궁이나 박물관을 구경하거나, 카스바(Kasbah-시장)에 가서 돌아다녔습니다. 사고 싶은 카펫도 있었지만 섬세한 조각을 한 나무로 된 문짝이 정말 탐이 나더군요. 잘 만든 것은 완전히 예술품이었습니다. 남편은 좋은 캐시미어로 만든 잘라바(Jalabah)라고 하는 발등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옷을 샀습니다. 어찌나 값을 깎는지 옆에서 보기만 해도 그 장사꾼이 불쌍하게 보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 남편처럼 값을 잘 깎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우리 남편하고 거래를 하면 돈을 벌 수 없고 저는 어수룩해서 남들이 해먹기 무진장 쉬운 사람이구요. 더군다나 가엽게 보이는 노인이면 값을 깎을 생각을 하기는커녕 주머니를 털어 저의 돈을 줄 생각을 하는 적도 있으니까요.
우리 가이드가 가까이 와서 요리에 쓰는 빨간 사프론을 싸게 살 수 있는 집이 있다고 비밀을 알려 주듯이 소곤거렸습니다. 귀가 번쩍 뜨여 그의 뒤를 쫓아 들어갔지요. 꽃 속의 빨간 술을 딴것이기 때문에 수공이 너무나 들어 금보다 더 비싼 양념이거든요. 음식에 넣으면 마치 고춧가루에 달걀노른자를 넣은 것 같은 색이 나고 구수한 듯한 맛과 향기가 있습니다. 보기에는 아주 섬세한 실고추 같아 보이지요. 이거 횡재 하는 게 아닌가 하고 보았더니 값은 괜찮지만 질도 뭐 그저 괜찮은 정도 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냥 나오기 미안해서 조금만 사 들고 나왔습니다.
그럼 그렇지! 어둑한 무렵에는 모두들 광장으로 나가 봐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넓다란 광장에는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습니다. 물건을 파는 수많은 리어카 상인들 뿐 아니라 피리를 불며 뱀에게 춤을 추게 하는 사람, 혼자서 묘기를 보이는 사람, 곡예사들 같이 두 세 명이서 팀이 되어 재주를 부리는 사람들, 하여튼 자기의 특기를 그 곳을 무대로 하여 마음껏 시험해 보는 자유 야외극장이었습니다. 하늘의 별이라도 볼 수 있는 대형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주렁주렁 걸고 다니는 일본 사람들과 반나체로 육체를 과시하는 옷을 입은 미국 여자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아랍 나라를 여행할 때는 여자들은 너무 노출된 옷은 삼가 하라던데 저 여자들이 어쩌자고 저렇게 나타나? 여자들이 살을 남에게 보이지 않는 풍습이 있는 나라에서 그런 과감한 노출을 보기만 해도 아슬아슬 하였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모두들 등불을 켜고 광장은 발 들여 놓을 틈도 없이 붐볐습니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번데기 같을 것을 수북이 쌓아 놓고 파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징그러워서 두 번 다시 쳐다 볼 수도 없더라구요. 제가 어렸을 때 먹어 본 기억으로는 먹을 땐 그래도 고소한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야, 저게 뭐야? 한 번 먹어 보지 않을래?응, 좋은 생각이야. 당신 한번 먹어 봐.왜, 넌 싫어? 옛날에 먹어 봤어. 지금은 그 냄새가 좀 이상해서....야, 참 까다롭다.많은 사람들과 섞이어 마음이 들떠서인지 우리도 오랫동안 서성거리다가 밤늦게서야 호텔로 돌아 왔습니다.
<에사우이라>
우리가 며칠 마라케쉬에서 묵는 동안 중간에 하루는 바다를 찾아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지도를 보고 에사우이라라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가는 길에 관광객은 눈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도 없고 방향 표시가 된 것도 거의 없었습니다. 아무나 붙들고 우리가 가는 쪽을 손가락질 하며, 에사
우이라? 하고 물어가며 찾아 갔습니다.마을에 도착한 그 때 마침 해변가에 많은 사람들이 한 무리가 되어 모여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 위를 수많은 갈매기들이 맴돌고 있었습니다. 마침 고기잡이배가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저 멀리로는 저녁노을에 반사되어 노르스름한 색이 도는 성벽과 그 뒷편에 하얀 집들이 보였습니다. 마치 신기루를 보는 듯이 아름다웠습니다.
호텔에 가서 짐을 풀고 어두워지기 전에 성벽이 있는 곳을 서둘러 갔습니다. 성벽 위를 거닐면서 높은 돌 벽에 부딪쳤다가 부서지는 파도를 내려다보며 걸었습니다. 아주 낭만적이고 조용한 마을 이었습니다. 상점에도 여기저기 손님이 한 둘 있을 뿐이었고 우리 같은 관광객은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이렇게 색다른 곳에 오면 남편이 제일 골탕 먹는 것은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는 것입니다. 이 곳 사람들이 쓰는 양념이 무척이나 강하기 때문에 어떤 때는 저의 속이 울렁거리기 때문이지요. 남편은 남들이 먹는 것이면 자기도 먹을 수 있다는 씩씩한 사고방식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니, 참, 그렇게 편리 한 게 어디 있을까 하고 저는 부러워합니다.
반면에 저는 좀 깨끗해야 하고, 소식가이거든요. 고급이 아니더라도 간단한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맛이 없으면 목으로 넘어 가질 않으니 어떤 때는 저도 고역이랍니다. 그럼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필경 우리 어머니 속을 많이 썩였을 것은 말 하나 마나이지요. 그러니 제가 요리 전문가가 된 것은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해변가의 괜찮게 보이는 레스토랑이 있어 들어갔더니 성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야, 이 사람들도 성게를 먹는구나. 신이 나서 두말 할 것도 없이 그 것을 시켰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제 마음 속으로는 그 노르스름하고 개롬한 성게 알을 혀로 문들어트리면서 고소한 맛을 거의 느끼는 기분이었습니다. 주문을 받은 후에 잡으러 갔는지 꽤 오래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에야 검은 성게를 대강 깨트려 담은 접시를 들고 왔습니다. 막상 제 앞에 놓인 성게에는 눈 씻고 보아야 콩알만한 것이 여기저기에 하나씩 붙어 있는 정도. 그 고소한 성게를 맛있게 먹으리라는 기대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배고픈 생각이 점점 더 심해졌지요. 온기가 가신 적은 밥 덩어리 위에 드리워진 탐스러운 성게 알 생각이 굴뚝같아졌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으로 더욱더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상 깊은 에사우이라였는데 우리가 갔다 온지 십여 년쯤 후에 뉴욕 타임스의 여행란에 에사우이라를 소개하는 글이 크게 실렸습니다. 우리 고향에 관한 글이라도 보듯이 아주 반가웠습니다. 그 기사를 읽으며 우리가 그 때 갔던 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신기루와 같던 그 아름다운 해변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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