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친구 아들이 있는데 글쎄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 지 전교1등만 한다더라. 혹은 엄마 친구 딸이 있는데 생긴 것도 미스코리아처럼 예쁜 애가 이번에 의대 갔다더라.등의 이야기를 누구나 자라면서 들었을 것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마친구의 자식들은 언제나 공부 잘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부모님 용돈도 듬뿍듬뿍 갖다 드린다니, 비범은 커녕 평범을 따라잡기도 힘든 나 같은 자식들은 모친께서 그런 친구들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괜히 딴청을 피우곤 했다. 가끔은 ‘한번 만나기만 해봐라’ 라며 오기도 부려보지만 만나서 뭐라 그럴 것인가? ‘제가 자라나는 동안 훌륭한 롤모델이셨던 분을 만나게 되니 영광입니다’라고 넙죽 엎어져야 하나, 아니면 ‘내 평생 당신 때문에 기 한 번 못 피고 살았다’고 따귀라도 한 대 올려붙여야 할까, 그러나 진짜로 만나게 된다면 소심하게 혼자만 눈 한번 흘기고 말 것이라는 걸 난 알고 있다. 아마도 그네들도 또 다른 ‘엄친아’(엄마친구 아들), ‘엄친딸’(엄마친구 딸)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엄친아’, ‘엄친딸’이란 말은 한 세대 전에 경기고를 나와 서울대를 졸업했던 사람들에게 KS마크가 붙은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좀 더 업그레이드가 된 게 있다면 인물까지도 보장된다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소개할 때 ‘이 사람은 명문대를 나오고 얼굴도 잘생겼어요.’라고 구구절절 말 할 것도 없이 그냥 ‘이 사람 엄친이에요.’라고 말하면 듣는 쪽에서도 척하고 알아듣는 세상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니 어떤 심정으로 모친께서 ‘엄친아’를 들먹이셨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내 소중한 자식들을 남들하고 비교하고 싶지 않지만, 좀 더 잘 하라고, 잘 되라고 다독이는 뜻에서 어쩔 수 없이 한 두 마디 하신 거라고... 나 역시도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다가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끝에 가서 ‘옆집 누구는 어떻다더라.’가 사설처럼 나오곤 한다. 그래서 우리 모친께 ‘엄친딸’이 되어드리지 못했던 게 죄송할 때가 있다. 나에게 잘 나가는 친구 자식들 이야기를 한번 꺼내 실 때 사실은 나로 인한 한숨은 세 번, 네 번 지으셨다는 걸 이제 와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모친은 알고 계실까? ‘엄친 딸’은 못 됐지만 ‘우리 엄마 딸’인 건 내 평생 두고두고 고마워하고 있는 걸... 아마도 모르시는 게 틀림없다... 아직도 전화드릴 때마다 잔소리뿐이신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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