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는 제 2회 세계 문학상을 수상한 박 현욱 씨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제목부터 약간은 ‘자극적’인 이 작품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남편이 있는 아내가 이중결혼을 하는 것이다. 연애 때부터 자기는 한 남자와만 살 자신이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던 그녀는 역시 결혼을 해서도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그녀의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 애원도, 협박도 해보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지만 아내를 막지 못한다. 더더구나 그런 아내와 헤어지지도 못한다. 그래서 이 작품의 끝엔 두 아빠와 한 엄마, 그리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 이렇게 흔치 않은 가족이 탄생한다.
그런데 여기까지 읽다가 이 상황이 불편하면서도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가? 이 비범한 가족의 모습에서 성의 역할, 말하자면 여자와 남자의 위치를 바꾸면 우리의 주변에서 심심찮게 보아 온 모습, 즉 한 아버지와 두 어머니,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의 모습이 아닌가 말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참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불편한 모습을 간과해왔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버지의 법칙을 따라야 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런 가부장적 법칙에 대한 패러디이다.
이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한쪽은 ‘시원하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쪽은 ‘불편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한쪽 반응은 오랜 세월 동안 지배해온 가부장적 체제에 대한 반기이고, 다른 쪽 반응은 모순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살아온 체제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것이리라.
내 경우엔, 처음엔 익숙한 체제에 대한 전복이라는 점에서 ‘시원하다’가, 문득 아이에게 시선이 가자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불편해’졌다. 아이에게 남들과 다른 자신의 가족의 형태에 대해, 사회의 질서에 대해, 그리고 가치관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 것인가? 아이가 느낄 혼돈과 갈등에 대한 해결책은?
혹자는 내가 느낀 이런 불편함에 대해, 한 작가의 상상 속에서 나온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가족과는 다르지만, 역시 소설이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한창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새로운 개념의 가족, 즉 현실적으로 두 아빠만 있는, 혹은 두 엄마만 있는 그런 가정에서 과학적인 방법이나 입양을 통해 태어나거나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에게도 이런 질문들이 대입되면서, 상상 속의 일로만 치부해 버리기에는 뒤에서 자꾸만 뭔가가 나를 잡아 당겨 불편하게 한다. 그들에게 무엇이 옳다고 가르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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