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30대 초반에 중매 결혼을 했다. 결혼 전 몇 개월 연애 기간 동안 만나 본 그녀의 남편은 성격도 좋고, 기분파이고, 무엇보다도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원래 약간의 보스 기질이 있는 남자를 좋아했던 그녀는 별 망설임 없이 그와 결혼했다.
그녀의 남편은 지방에서 제법 알려진 회사에 다니다가 한참 벤처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던 시절, 스스로 조그만 사무실을 열어 능력을 발휘하더니 급기야는 도시로 옮겨 직원이 백 명 가까이에 이르는 회사를 이뤘다. 워낙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회사도 잘 운영하는 듯 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그녀의 남편은 약간 가부장적인 면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래서인가, 집에서는 밖에서의 일을 절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회사 사정에 대해서도 가끔 회사 직원들과 회식이 있을 때 직원들이나 그들의 부인들을 통해 듣는 게 전부였다. 남편이 얼마를 버는지, 사업이 어느 정도의 수준인지, 남편이 전혀 말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알 수도 없었고, 또 물어도 자세한 대답 없이 ‘당신은 그냥 집에서 아이들이랑 편히 지내면 돼.’가 다였다. 달리 해석하면, ‘당신은 몰라도 돼.’, 즉 ‘여자인 당신이 말해줘도 뭘 알겠어.’였다. 심지어, 잘 나가던 회사가 벤처의 몰락과 함께, 자금 융통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될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도 그녀는 그 소식을 직원 부인을 통해서 들었다.
그녀의 우울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신은 이 사람에게 무엇인가로부터 시작된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지면서, 자신은 그저 남편의 인생의 여정에 끼어 있는 부속물 정도일 뿐이라는 생각이 그녀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결혼생활 이십년 가까이 같이 잠자리에 드는 날이면 아직도 팔베게를 해주는 남편이지만, 그 뿐, 고독의 심연으로 추락하는 그녀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고, 그것은 공황장애로 이어졌다. 다른 부부들처럼 일상적인 고통이나 고민을 나누며 살지 못하고, 그저 아침에 나갔다 밤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바라보며, 아이들을 향해 모든 정성을 쏟았지만, 넷이나 되는 아이들도 허무하고 텅 빈 그녀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우울증이 발병하고부터 그녀는 자주 아이들에게 혹시 엄마가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는지 살피라고 말했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여기 저기서 우울증으로 인한 사고 소식이 들려오면, 그녀는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래서 또 스스로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엔, 가끔, 부부가 함께‘마음’을 나누고, ‘일상’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큰 소리로 외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부부 사이에 ‘당신은 몰라도 돼.’는 일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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