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사정에서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 한 몫 하게 생겼다. 시카고 근교에 위치한 엠허스트(Elmhurst) 칼리지는 올해부터 “자신을 LGBT(레스비언ㆍ게이ㆍ양성애자ㆍ성전환자)로 여기는가”라는 질문을 지원서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동성연애 학생 클럽에 관심이 있습니까”라고 보충지원서에서 묻는 다트머스 대학, 동성연애자라는 사실을 밝히는 신입생이 있다면 그에게 멘토를 붙여주는 유펜이 있다. 하지만 지원자의 섹스 취향을 대놓고 묻기는 대학 입시전형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엠허스트 입학처장 게리 롤드는 “성적 지향도 다양성의 한 가지 표현 방법이다. 우리는 소수그룹 지원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특히 LGBT 학생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캠퍼스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 질문을 첨가했다”고 발표했다.
그런 학생에게 푸짐한 장학금도 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지원자에게 “예, 아니오, 무응답”으로 표기하는 옵션이 주어졌다지만, 장학금을 받기 위해 동성애자라고 대답하는 학생의 성적 지향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엠허스트의 새로운 시도가 400여개 대학이 사용하는 공동지원서로 번진다면 입시전형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지난 1월에 열린 공동지원서의 임원회의에서 지원서에 성적 지향을 묻자는 안건은 부결됐다.
그렇지만 이번 엠허스트의 결정에 힘입어 희귀성ㆍ다양성ㆍ색다름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대학은 입학지원서에 기상천외한 질문을 등장시킬 것이다.
는 공산당ㆍ녹색당에 가입한 지원자에게 호의를 베풀고, 종교적으로는 여호와 증인, 몰몬 학생을 우선적으로 가려낼 수 있는 질문을 포함시키지 않을까.
‘사회 공학’이라고 불리는 입학사정 제도는 다양성이라는 이름아래 대학의 본래 목적을 져버렸다. 합격자와 불합격자를 가를 때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학업능력이 아니라 지원자의 사회적 혹은 개인적 환경이라면 대학은 더 이상 교육기관이 아니라 사회복지 시설이다. 그에 따라 정상적인 지원자가 설 자리는 매년 줄어들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 즉 학업준비 여부를 아예 묻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한 예로 1980년대 초 재학생 대부분이 백인 학생이었던 시카고 대학에 최근 들어 흑인과 히스패닉 학생이 각각 7%, 9%를 차지하고 있다. 시카고 대학의 한 입학 사정관은 “소수민족 학생 수를 그 정도 늘리기까지 입학사정처가 지원자의 성적과 표준시험 점수에 눈가림을 해야 했다”고 실토했다.
대학이 시장 영역을 넓히려고 희한한 질문을 짜내는 동안 정작 중요한 것을 입학지원서에서 빠뜨리고 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적인 세태를 감안하여, 지원서 에세이를 본인이 직접 작성했는지, 교내외 활동에 실제로 참여했는지, SAT 점수는 스스로 공부해서 얻은 것인지, 공부하는 스타일은 어떤지 등의 질문을 포함 시켜야 하지 않을까.
성적 지향ㆍ인종ㆍ종교에 상관없이 지식정보 사회를 이끌고 갈 미래의 인재를 가려내기 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인기와 관심에 편승하여 엉뚱한 이유로 지원자를 유혹하는 것은 그들의 장래를 가로막는 일이다.
전 세계에서 학생이 몰리고 있다고 미국 대학은 자랑하지만, 정작 기초적인 교육조차 손대지 못하고 있다는 공인된 사실을 잊고 있다.
“대학 졸업자의 40%가 읽기ㆍ쓰기ㆍ사고능력이 부족하다”로 결론 내린 연방교육부 보고서 ‘고등교육의 미래’를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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