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주 대학에 진학한 한 한인학생에게서 들은 얘기다. 그 대학에 한인학생이 드물어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몽골, 필리핀 등 외모가 자기와 비슷한 동양계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되는데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이 자기보다도 더 한국적이기 때문이란다.
불고기, 잡채, 라면은 기본이고 맵고 짠 김치찌개도 자기보다 더 잘 먹을 뿐 아니
라 자기는 알지도 못하는 한국 노래를 자기보다 훨씬 더 유창한 한국어 발음으로 흥얼댄단다. 또한 한국영화는 물론, TV 드라마들도 줄줄 꿰며 한인인 자기에게 “000 드라마가 가장 재미있으니 꼭 보라”고 권하더라고 했다. 또 이런 저런 한국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어머니에게 물어봐달라며 부탁까지 한다면서 자기가 외국인 친구들 사이에 ‘인기 짱’이 됐다고 말했다.
동남아 각국에서 부는 한류열풍은 미국보다 더 강하다. 캄보디아의 왕립 프놈펜대학과 몽골 수도 올란바토르의 후레 정보학교에선 한국어가 필수과목이다.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 부족은 아예 한글을 자기네 나라 글자로 채택했다고 한다. 이란에선 성스런 라마단 기간에 테헤란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드라마 ‘대장금’을 시리즈로 단체 관람했다.
유럽의 한류열풍도 대단하다. CNN이 가수 ‘비’를 비롯해 슈퍼 주니어, 원더걸스, 샤이니 등 K-Pop 스타들을 잇달아 인터뷰할 정도다. CNN은 K-Pop의 인기가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각국에서 치솟는 이유는 가수들이 모두 잘생기고 예쁘고 율동이 독특하면서도 활달해서 누구나 따라하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나름 분석했다.
한인 2세들 가운데는 영어가 부족해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 싶으면 부모를 은근히 무시하는 풍조가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은 아니다. 오히려 한국말을 알아듣기 위해 노력하고 엉성한 발음으로라도 한국말을 하려고 애쓰는 2세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전엔 한국말 못하는 것을 당연지사로 치부했던 2세들이 이제는 그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더 일찍 배우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경향이다.
청소년 전문기관 ‘유스 앤 패밀리 포커스’의 한 관계자는 10년 전만해도 미국인을 자처하고 김치를 외면하며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영어만 쓰는 등 정체성에 혼돈을 겪는 한인 청소년들을 많이 봤지만 해가 갈수록 그런 경향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요즘은 오히려 자기가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쪽이 대세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 한인학생은 요즘 한인 청소년들 사이에 ‘want to be korean’ 이라는 은어가 나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류는 이민 1세는 물론 1.5, 2세들에게까지 모국의 문화와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도록 만드는데 다른 어느 것보다도 크게 일조하고 있다. 영국 국영 방송국인 BBC는 삼성 전화기, 현대자동차, LG 가전제품에 이어 이젠 한류 가수들이 세계를 향한 수출품으로 대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드디어 한류열풍이 이제 최종목표인 미국도 강타했다. 대중문화의 메카인 뉴욕 센트럴 파크에 한류 마니아들이 모여 자기들이 좋아하는 한국 가수 이름이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이들이 방문공연 해줄 때까지 시위를 벌이겠다며 한국노래 ‘사랑해요’를 열창한다. 반세기 전엔 한국의 청소년들이 폴 앤카의 ‘다이애나’나 닐 세다카의 ‘오, 캐롤’을 열창했었다. 한류열풍은 잠깐 불었다 소멸되는 바람은 아닐 것 같다. 한동안 계속될 뿐 아니라 한국 문화가 세계문화의 판도를 바꾸어 놓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한류열풍을 타고 한국음악, 영화, 드라마는 물론, 한국어, 한국 음식, 나아가서는 한국 자체를 사랑하는 지구촌 이웃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는 우리 자녀들의 정체성과 뿌리의식을 확립시키고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 자긍심을 갖도록 유도해주는 아주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여주영
뉴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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