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살다보면 이북출신 실향민들을 많이 만납니다. 고향을 한번 떠나 전쟁통에 남쪽으로 내려와 디아스포라의 삶을 삽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것에 대하여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듯 합니다. 한번떠나본 사람은 또 떠날줄 압니다. 한번 순종하여 본 사람은 또 순종할줄 압니다. 빌립이 한번 순종하더니 이번에는 가사 따으로가는 광야의 길로 가라는 주의 사자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광야길로 갑니다.
가서보니 거기에 가라고 하신 주의 사자의 뜻을 알게 됩니다. 알기원하는 사람은 먼저 순종하여야 합니다. 알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알기 위하여 순종하는 삶이 디아스포라 신앙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미국을 다 알고 오지는 않았습니다. 와 보니 왜 와야 되었는지 깨달을 때가 너무 많이 있습니다. 빌립이 순종을 해서 광야길에 와보니 병거를 타고 에디오피아로 돌아가는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있는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내시는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얻어서 읽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아무리 읽어도 깨닫지를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바로 그 때 였습니다.
성령님이 나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행하라고 하실 때 순종하여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나의 도움이 절실이 필요한 사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할 사람, 구원받아야 하는데 준비가 되어있는 한 사람을 하나님은 다 준비하여 놓으시고 나를 불러 화룡점정 하라고, 하나님이 다 하실수 있는데 나를 통하여 ‘전도의 미련한 방법으로’(고전 1:21) 나를 통해 영혼을 구령하라고, 마침표 찍으라고 나를 불러주실때가 많이 있는 것입니다.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우리들이 가장 잘 할수 있는것중의 하나가 ‘영적순발력’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즉각 즉각 떠날 수 있는것입니다. 깊이 내렸던 뿌리를 뽑아 한번 떠났는데 못 떠날 이유가 더는 없습니다. 빌립이 순종함으로 만난 한 사람은 한 나라에 영향을 끼칠수 있는 큰 권세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읽고 있던 이사야의 글을 해석하여 주고 이사야에 등장하는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내시에게 전도합니다. 그리고 그 내시가 길가에 있는 물에가서 세례를 받게 됩니다. 세례받은 그 한사람의 내시는 만약에 에디오피아 나라에 있었다면 만나기 힘들었던 사람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은 또 자신의 고향을 떠나 ‘움직이는 삶’속에서 빌립도 만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내시 한사람이 크리스찬이 되어서 자기 나라로 돌아가 많은 에디오피아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오늘날의 에디오피아 크리스찬들이 빌립을 만나 예수믿고 돌아온 내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다가 루디아를 만나 유럽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오늘의 디아스포라는 순종이 꿈이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순종하고 왔는데 더 순종하지 못할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령님의 인도로 순종할 때 나 한사람의 작은 순종이 한 나라를 살리는 원인이 될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디아스포라의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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