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못 떠난 저녁은 희망주점에 모여든다
한 사람은 바다를 향해 앉아있고
몇 사람은 등 돌려 담배를 태운다
이따금 목을 뽑고 울던 뻐꾹새가 메종과 함께
벽시계 속에서 아주 사소하게 앉아있다
푸른 피브이시 처마를 지붕에 잇댄 벼랑 집
주파수를 더듬거린 라디오가 직직대며
천둥이 울고 태풍이 온다 해도 태평하다
흰색과 흑청색의 암벽에 붙어있는 철새들
겁 많은 가마우지는 벼랑위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구석의 유도화에게 애면글면 불평한다
한 번도 꽃 피운 적 없는 화분에 물을 줄 적마다
그의 몸은 반쯤 기울어 주점도 따라 기운다
일천 씨시짜리 생맥주가 몇 조끼 덤처럼 팔리는 날은
희망주점엔 누우런 웃음소리들이 지지러진다
날갯짓 소리보다 가볍게 환하게 퍼져간다
그런 날은 벼랑 끝의 새들도 헐렁헐렁
곧 멀리 날아갈 채비를 한다
노향림(1942 - ) ‘희망주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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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천 씨씨 생맥주를 몇 조끼만 팔아도 희망이 넘치는‘희망주점’. 우리 동네 풀러튼에도 비슷한 이름을 가진‘낭만주점’이란 술집이 있다. 벼랑 끝에 붙어있는 희망주점의 희망이 멀리 날아가는 것이라면, 낭만주점의 낭만은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아직 못 떠나고 돌아오는 저녁처럼, 그곳을 자주 찾는 낯익은 얼굴들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70년대식‘낭만’과‘희망’이란 단어에 묻어있는 낡음과 쓸쓸함, 그리고 따스함에 중독돼 있는 것은 아닐까.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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