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덕선 수필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 계절을 다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가을을 제일 좋아한다.
봄은 새로운 생명이 잉태하여 대지에 활력을 불어 넣는 계절, 침체되어 있던 겨울을 이기고 희망을 심어주는 봄, 여름은 잉태한 봄의 생명들을 왕성하게 자라게 하며, 대지를 푸른색으로 물들이며 풍성한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는 열음의 계절, 가을은 여름내 땀 흘린 수고와 보람을 거두어 들이는 수확의 계절, 천고마비의 계절, 독서의 계절, 등의 별칭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을은 나에게는 사색의 계절이기도 하기 때문에 더욱 좋아한다.
세월은 너무 빨라 뒤를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릴 때도, 어느덧 앞마당에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리며 높고 맑은 가을하늘,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 새들을 보면서 “아! 가을이 왔구나.” 하고 느끼는 순간 나는 어느덧 지나 온 세월을 돌아보게 된다.
겨울은 하얀 눈꽃으로 추한 인간들의 모습을 뒤덮어 나 보란 듯이 순결한 누리를 펼쳐주어서 좋다.
지금도 내 추억의 노트에서 잊어지지 않는 가을이 있다.
여고시절 설악산에 수학여행 갔을 때이다. 산 전체가 울긋 불긋 아름다운 물감으로 물들지 않은 산이 없고 멀리 보이는 산들과 골짜기 들은 불타는 한 폭의 큰 그림처럼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오던 적이 있었다.
이 나뭇잎 들은 자신들이 조금 있으면 다 떨어져 죽을 것인데 어찌하여 이렇게 아름답게 치장을 하였을까?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감탄하며 계절의 그 질서를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을 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처음으로 보았던 때였다.
그때 설악산에서 본 머루는 포도보다 작은 알맹이의 검붉은 자주색으로서 포도보다 달고 맛이 좋았다. 그 이후로 머루나 머루주스를 만나면 꼭 사서 먹곤 한다.
미국에 와서도 가을이오면 그 때 설악산의 단풍을 생각하곤 했었다. 바쁜 이민생활은 단풍 구경을 갈 정도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다행히도 출퇴근 시간에 볼 수 있는 공원길의 단풍을 보면서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생각하며 지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 공원길의 아름다운 단풍들도 볼 수 없는 곳에 나는 와있다.
가을이 없는 곳이다. 가을을 잃어버렸다.
이름 모를 열대 꽃이 만발하고 파인애플과 파파야 바나나 등의 열대 과일이 풍성히 자라고 있는 곳,
지금도 수영을 하며 가을을 잃어버렸다.
그리운 친구에게 편지도 쓰고 싶고 미루어놓았던 글 쓰는 일들도 하나하나 해야 하고, 보고 싶은 책들도 읽어야 하고….
언제나 가을이 오면 새로운 다짐으로 하던 일상생활을 이곳 잃어버린 가을에도 나는 계속할 것이다.
가을을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 드높은 가을하늘, 산들바람,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하루가 다르게 물들어가는 단풍잎들, 토실토실 여문 밤송이, 빨갛게 익은 사과와 감, 배….
김 현승 시인의 ‘가을날’을 읊조리며 나는 소슬한 바람에 옷깃을 세우고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밟으며 가을의 풍요로움과 가을바람에 묻어나는 가을향기를 음미하던 아련한 추억에 잠기면서 지나 온 세월의 상념을 되작거리면서 지금 잃어버린 가을 속을 걷고 있다.
하와이 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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