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종차별 희생양…상·하원의원 4명 사면안 발의
사상 최초의 복싱 헤비급 흑인 챔피언 잭 잔슨은 인종차 별이 극심했던 시절 백인들의‘공공의 적’ 이었다.
미국 의회가 백인 여성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투옥된 최초의 흑인 복싱 헤비급 챔피언 잭 잔슨(1878~1946)의 사후 사면을 재추진하고 있다.
5일 해리 리드(민주당)·잔맥케인(공화당) 상원의원, 피터킹(공화당)·윌리엄 모 카원(공화당) 하원의원 등 4명이 잔슨의 사후 사면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촉구하는 사면안을 발의했다. 이들의 청원은 잔슨이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1913년 매춘금지법(Mann Act)위반으로 기소된 뒤 10개월간의 실형을 받은 것이 인종차별에 근거한 판결임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사면해달라는 것이다. 잔슨의 사면 결의안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인 2004년에도 발의됐으나 상·하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또 2010년에는 상·하원을 통과하면서 기대를 모았으나 최종 결정권자인 오바마 대통령이 사인하지 않아 사면이 이뤄지지 않았다. 올해는 잔슨이 인종차별의 희생양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여서 한 세기 만에 미국이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1878년 텍사스에서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잔슨은 1908년 세계 헤비급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때 당시‘ 흑인 챔피언’은 백인에게는 치욕이었고 잔슨은‘ 위대한 백인의 희망’을 되찾으라는 사명을 띤 숱한 백인 선수들과 싸워야 했다. 잔슨의 피부색 때문에 한때 대결을 거절했던 전 챔피언 제임스 제프리스까지 링에 복귀해 1910년 잔슨에게 도전했지만 결과는 15라운드 KO패였다.
잔슨은 링 바깥에서도 백인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고 맞서 백인들을 자극했다. 더욱이 백인들이 참을 수 없었던 점은 잔슨이 끊임없이 여러 백인 여자들과 스캔들을 일으키다 급기야 백인 여자와 결혼까지 한 것이었다.
백인사회에서 ‘공공의 적’이 된 잔슨은 1913년 전 애인이었던 백인 매춘부 여성
에게 피츠버그에서 시카고로 가는 기차표를 끊어 줬다는 이유로 기소된다. 매춘부가 주 경계를 넘어 여행하는 것을 금지한 법을 위반했다는 혐의였지만 실제로는 그가 백인들을 불편하게 한 데 대한 앙갚음이었다.
잔슨은 결국 전원이 백인 재판관으로 채워진 법정에서 1년형을 선고받았고 그는 옥살이를 피해 즉각 해외로 도피했다. 하지만 도피생활에 지친 잔슨은 1920년 미국으로 돌아와 10개월간 감옥살이를 했고, 말년에는 밤무대 가수로 떠돌다 1946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그는 사망했지만, 아직도 법적으로는 아직 전과자 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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