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로크풍 낭만선율과 로맨틱 의상… 카운터테너 3명 마녀 분장 눈길
▶ 어둡고 우수에 찬 음악… 7개의 방에서 만나는 다른 자아 신선
유디트(맨 앞)는 남편의 과거에 대해 점점 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디도와 아이네아스가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무대가 굉장히 미니멀하다. 두 오페라 모두 황량할 정도로 빈 공간, 세트랄 것이 거의 없는 채로 진행된다. 그러나 공연은 강렬하고 음악은 매혹적이다. 이 공연은 완전히 보는 사람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끌어들이는 카리스마의 힘으로 끌고 간다. 그 카리스마는 연출가 배리 코스키의 것이다.
그런데 작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마술피리’의 배리 코스키 감독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페라와 만화와 무성영화를 섞어 만든 톡톡 튀는 ‘마술피리’와는 전혀 다른, 어둡고 철학적이며 심오한 2개의 오페라 프로덕션을 만나게 된다.
남녀의 만남, 사랑, 집착, 헤어짐, 죽음이 빚어내는 욕망과 갈피를 무섭도록 깊고 집요하게 표현한 비극의 정수를 보여준다. 전통적인 오페라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낯설고 부담스러울 수 있는, 그러나 대단히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성의 프로덕션이다.
25일 LA 오페라가 도로시 챈들러 무대에 더블빌(동시 공연)로 올린 ‘디도와 아이네아스’(Dido and Aeneas)와 ‘푸른 수염의 성’(Bluebeard’s Castle)은 너무나 대조적인 음악과 내용과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집중력이 요구되는 특별한 공연이었다. 스티븐 슬론(Steven Sloane)이 지휘한 음악은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울렸고, 출연 가수들은 하나하나 돋보이는 호연과 열연을 펼치며 관객들을 극 속으로 몰입시켰다.
헨리 퍼셀의 ‘디도’(공연에선 다이도라고 발음)는 무대 앞으로 바짝 끌어당겨 놓은 아주 긴 흰색의 나무의자 한 개만이 배경이다. 등장인물들은 거기에 앉고 서고 뛰고 눕고 놀며 노래한다. 때로는 무대 아래로 내려와 오케스트라 옆에서 합창하는가 하면 관객들 사이를 돌아다니는데 마치 라이브 음악과 노래가 있는 연극을 보는 듯도 하다. 이 간단한 세트를 화려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름답고 로맨틱한 의상들.
오케스트라 피트는 반쯤 위로 올라와 있고(20여명의 작은 앙상블이다) 덕분에 류트, 쳄발로 등 바로크 시대의 고악기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영국의 17세기 바로크 음악은 가볍고 낭만적이며 또한 오페라 가수들의 발성도 조금 다른데 두 주인공 메조소프라노 폴라 머리히(Paula Murrihy)와 바리톤 리암 보너(Liam Bonner)가 이를 훌륭하게 재현해 들려준다.
오페라 ‘디도’에서 특별한 것은 카운터테너 3명(잔 할러데이, 토머스 알렌, 대릴 테일러)이 마녀들로 나오는 것이다. 이 공연에서는 3명이 모두 흑인들이라는 점이 더 특이하다 하겠는데, 마녀 의상으로 분장한 이들의 코믹터치가 분위기를 크게 돋워준다.
디도의 죽음 장면을 대단히 특이하게 처리한 점이 멋지다.
벨라 바르톡의 ‘푸른 수염’은 분위기가 확 바뀌어 오케스트라는 풀 편성으로 커지고 다시 아래 피트로 내려간다. 음악은 훨씬 풍성하고 깊고 바르톡 특유의 어둠과 슬픔이 가득하다.
무대는 이번에는 턴테이블처럼 서서히 돌아가는 둥근 원판 하나, 그 위에서 두 주인공만이 한 시간 동안 노래하고 애원하고 경고하고 경악하는 공연이 펼쳐진다.
베이스 바리톤 로버트 헤이워드(Robert Hayward)와 메조소프라노 클로디아 맨키(Claudia Mahnke)는 황량한 무대 위에서 거의 육박전을 벌이듯 서로를 갈구하고 만류하고 포기하고 스러지는 모습을 아주 절절하게 노래하고 연기한다.
7개의 방이 하나씩 열릴 때마다 발견하는 내용을 처리한 특수효과가 눈에 띄고, 푸른 수염의 다른 자아들의 등장과 죽은 아내들의 현신은 참으로 신선하고 놀라운 연출이라 하겠다. 11월2, 6, 9, 12, 15일 5회 공연이 남아 있다.
www.laopera.org, (213)972-8001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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