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환의 고전산책 101
▶ <87> 토마스 만 ‘마의 산’
게르만 민족은 어쩌면 가장 이성적인 동시에 광적인 민족이다. 나치 히틀러가 정권을 잡고 세계대전을 일으킬 때 독일의 철학자, 문학가들은 히틀러를 지지하든지 아니면 강제추방을 당하든지 양자택일을 했어야 했다.
그러자 인간의 이성과 순수 양심을 주장하던 수많은 지성인, 철학자들은 앞을 다퉈 나치당에 입당해 히틀러 만세를 외쳐댔고, 당대 최고의 지성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마르틴 하이데거(시간과 존재의 저자)는 “오직 총통(히틀러) 한 사람만이 독일의 현실이며 미래이고, 독일의 법이다”며 나치 정권의 철학적 정통성을 제공한 대표적인 학자가 되었다. 인간의 지성이란 믿을 것이 못된다.
그 와중에 신학자 가운데는 본 회퍼, 철학자 쿠르트 후버, 문학 쪽에서는 토머스 만과 같은 사람들이 히틀러의 파시즘을 비난하는 세력으로 잔존했었고 후에는 모두 미국 망명길에 오른다.
1929년 노벨 문학상 수상했던 토머스 만의 ‘마의 산’(The Magic Mountain)은 2차 대전 중 스위스 결핵 요양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을 시작해 미국 망명기간에 완성한 작품이다.
주인공 한스 카스토르프는 사촌이 치료 받고 있는 요양원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그 곳에서 오히려 자신의 병이 발견되어 7년 동안 요양생활을 하게 된다. 요양원은 세계 각처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그들은 국적도 언어도 다르고, 교양도 지식수준도 천차만별이어서 주인공에게 아주 낯선 세계를 경험케 한다.
장편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하게 말해서 등장인물들의 끊임없는 대화와 명상이다. 현실 세상에서는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서 현실과 동떨어진 산 위의 요양원은 일종의 마법(magic)의 산과 같은 곳이었다. 이 책이 유명한 작품이면서도 일반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하는 것은 큰 사건이나 반전이 없고 분량이 긴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작품이 품고 있는 이중성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교양소설, 시대소설, 사회풍자 소설 등으로 분류가 된다. ‘마의 산’의 영어 제목이 ‘The Magic Mountain’인데 여기서 ‘magic’은 ‘마’(魔)의 의미로 ‘마력’ ‘주술’ ‘요상함’ 등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요양원으로 가기 위해 산을 오르내리고 배를 타고 기차를 타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자신의 행위와 존재에 대해서 점점 더 혼란스러워한다. ‘마의 산’으로 들어가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어떤 마력의 힘에 이끌리는 것 같다고 주인공은 생각하고, 자칫 그 곳을 빠져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병과 죽음이 지배하는 요양원에서 하산하여 현실적 삶으로 돌아가 전쟁에 참여한다.
토머스 만이 12년에 걸쳐 집필한 ‘마의 산’은 사회적 휴머니즘이라는 토머스 만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많은 독일의 문학가, 철학자들이 히틀러의 광기에 홀려 변절의 길을 가고 있는 동안 토머스 만은 그나마 유일한 독일의 양심이었다.
철학은 이성과 합리성에 기반 한 도덕적 판단과 관련된 학문이다. 그런데 철학의 나라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들이 홀로코스트와 같은 유대인 대량 학설의 광란에 동조했을 뿐 아니라 사상적 근거를 제공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인간의 지성과 양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백승환 / 예찬출판기획 대표(baeksteph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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