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승환의 고전산책 101
▶ <91> 심훈 ‘상록수’
잠깐 잘하거나 한동안만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끝까지 누구를 사랑하는 일, 주위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항상 싱싱한 푸르름을 간직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아랑곳없이 항상 푸르름을 간직한 채 굳굳이 서있는 상록수(常綠樹)는 일제치하 암울한 시대를 건너오던 항일 지식인들에게는 지조와 정절의 상징이었다.
한국 근대소설의 대표작 심훈의 상록수는 이광수의 흙과 더불어 한국 농촌 계몽소설의 쌍벽을 이룬다. 일제의 우민화 정책에 대한 항거로 시작된 농촌 계몽운동의 뿌리는 19세기 말 러시아 브나로드 운동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브나로드(V Narod)란 ‘민중 속으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러시아어로 제정말기 지식인들이 이상사회 건설을 위해 먼저 민중을 깨우쳐야 한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수백명의 러시아 청년 학생들이 농촌으로 들어가 계몽 교육활동을 벌였던 일을 말한다.
그 후 브나로드는 농촌 계몽운동을 뜻하는 동의어로 사용되었고, 일제시대에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농민들에게 ‘아는 것이 힘이다, 배우자 그리고 가르치자’라는 민중교육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는데 상록수는 바로 이런 시대적 상황을 무대로 하고 있다. 소설 상록수는 전도사 최용신(소설속의 채영신)이라는 실존인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신문사 주최 농촌 계몽운동에 참여한 박동혁과 채영신은 주최 측이 베푼 위로회에서 함께 연설을 한 것이 계기가 돼 알게 된다. 학교를 졸업한 뒤 동혁은 고향인 한곡리로 영신은 기독교 청년연합회 특별 파견자의 신분으로 경기도 청석골로 각각 내려가 농촌사업에 헌신한다. 그러던 중 그들의 동지의식은 사랑으로 발전하여 혼인을 약속하게 된다.
고리대금업자 강기천이 동혁의 농민운동을 방해하기 위해 농우회원들을 매수하는 등 농간을 부리자 이에 화가 난 동혁의 동생 동화가 회관에 불을 지르고 동혁은 동생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잡혀간다. 그가 감옥에서 풀려나 청석골로 영신을 찾아갔을 때 그녀는 과로로 인한 지병이 재발해 이미 죽어버린 뒤였다. 영신의 죽음을 알고 동혁은 이제부터 두 사람의 몫을 해낼 것이라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며 한곡리 청년회관으로 돌아온다.
심훈은 안타깝게도 35세의 젊은 나이에 장티푸스에 걸려 요절했다. 죽기 전 심훈은 일제의 식민통치가 점차 지식인들의 목을 조여 오는 상황 가운데 광복의 그 날을 꿈같이 기대하며 ‘그날이 오면’이라는 유명한 저항시를 남겼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일제 강점기 때 농촌 계몽운동,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에는 항상 개신교의 영향이 있었다. 사회를 깨우치고 계몽운동을 벌이는 일에 개신교가 늘 앞장을 서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개신교는 어쩌다 이런 선한 영향력은 모두 상실하고 오히려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었는지 기독교 계몽소설 상록수를 읽으며 다시 한 번 반성해 볼 문제이다.
<예찬출판기획 대표(baekstephe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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