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유럽에서는 좀 이상한 정물화가 유행이었다. ‘정물화’하면 보통 연상되는 것이 아름다운 꽃이나 탐스러운 과일, 화병 등. 그래서 집안을 화사하게 장식하는 데 좋은 그림이다.
그런데 문제의 정물화는 좀 으스스하다. 그림 한가운데에 해골이 놓여있다. 해골과 함께 단골로 등장하는 것은 모래시계. 그 외 책, 악기, 불 꺼진 램프 혹은 썩은 과일 등이 배치된다.
이들이 어우러져서 표현하려는 것은 삶의 무상함. 일명 바니타스 정물화이다. 바니타스는 라틴어로 허무나 덧없음을 의미한다. 그림은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 아무리 부귀와 영화를 누려도 인간은 유한한 존재, 머지않아 죽음을 맞아 해골이 된다는 경고이다. ‘모래시계’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시간, ‘불 꺼진 램프’나 ‘썩은 과일’은 생명의 유한성을 상징한다.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의 한계, ‘악기’는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의 무상함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도서 1장2절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가 된다.
한국에서는 모래시계가 흔치 않았다. 한국인들이 ‘모래시계’와 친숙해진 것은 드라마 때문이었다. 지난 1995년 방영된 ‘모래시계’는 문화적 사회적으로 일대 사건이었다.
탄탄한 스토리에 깔끔한 연출로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이렇게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감탄을 하면서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그해 1월과 2월, ‘모래시계’ 방영시간이 되면 술집은 텅 비고 거리는 한산했다.
모두 시간 맞춰 귀가를 해서 ‘귀가시계’라고 불렸다.
‘모래시계’는 여러 사람을 스타로 만들었다. 배우 최민수가 전성기를 맞았고, 고현정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지금은 대스타가 된 이정재가 배우로 처음 눈길을 끈 것도 ‘모래시계’ 덕분이었다. 감독을 맡은 김종학 PD, 극본을 쓴 송지나 작가 등 모두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 모래시계’로 가장 덕을 본 한사람을 꼽자면 단연 홍준표 경남 도지사다. 드라마에서 조직폭력배, 도박업계 거물, 부패한 정치권력에 맞서 싸우는 정의로운 검사가 홍준표 당시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를 모델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미 ‘소신 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그에게는 ‘모래시계 검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드라마 ‘모래시계’의 선풍적 인기는 그대로 그에게 자산이 되었다. 이듬해인 1996년 그는 ‘모래시계 홍준표’라는 만화 선거공보를 배포하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정계에 입문했다.
스타 검사에서 스타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던 홍 지사가 생애 가장 궁색한 처지에 몰렸다. “좀도둑은 개인 몫을 훔치지만 고위공직자의 부패는 국가기강을 무너트린다.
검사는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끝없이 감시하고 처단해야 한다.”며 당당하던 그가 지금 고위공직자 부패 혐의로 후배 검사들 앞에 섰다.
그의 ‘모래시계’의 모래가 이제 다 흘러내린 모양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