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에서 해리엇 터브만처럼 극적인 삶을 산 인물도 드물다. 터브만은 흑인 노예를 부모로 1820년대 초 메릴랜드에서 태어났다. 노예였기 때문에 출생신고도 없었고 정확한 출생일자도 기록된바 없다. 그는 어려서부터 구약에 나오는 모세 이야기를 특히 좋아했으며 자신도 언젠가는 노예로 비참한 삶을 살고 있는 동료들을 자유의 땅으로 이끌겠다는 꿈을 꾸곤 했다.
그가 10대 때 그의 일생을 전환시킨 사건이 일어난다. 도망가는 흑인 노예를 잡기 위해 백인 관리자가 던진 아령에 머리를 맞은 것이다. 이틀 동안 혼수상태로 있다 깨어난 터브만은 목숨은 건졌으나 평생 두통과 발작, 그리고 비전에 시달렸다. 터브만은 이때부터 찾아온 비전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고 자신과 흑인 노예 해방을 평생의 사업으로 여기게 된다.
1849년 주인이 터브만을 팔아넘기려 하자 터브만은 그해 9월 탈출을 결심하고 흑인 노예 탈출 조직인 ‘지하철’ (Underground Railroad)의 도움을 받아 자유의 땅 펜실베니아로 도주하는데 성공한다.
노예제에 반대하는 퀘이커들이 중심이 된 이 조직은 남북전쟁 전 수천 명의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는데 일조했다.
터브만은 그 후 11년간 메릴랜드주를 13차례 드나들며 자신의 형제와 부모를 비롯 70여명의 흑인노예를 탈출시켰다. ‘흑인 모세’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이 때문이다.
터브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흑인해방을 위해 무장 봉기를 일으킨존 브라운을 도왔고 남북전쟁이 터지자 북군의 스파이로 활동하는가 하면 무장 군인을 이끌고 남부군을 공격해 노예들을 해방시켰으며 부상당한 북군 병사들을 간호하기도 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는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투표권을 받아야 한다며 여성 참정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노후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 달라며 자기가 가지고 있는 땅을 교회에 기부했고 자신도 거기 들어가 살다 1913년 90이 넘은 나이에 숨을거뒀다.
이같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일반 사람들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그를 앞으로는 좀 더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20달러 지폐에 여성을’(Women on 20s)이라는 이름의 단체는 현재 앤드루 잭슨이 그려져 있는 20달러짜리 지폐에 여성을 넣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최근 실시된 투표 결과 해리엇 터브만이 엘리노어 루즈벨트와 로자 팍스 등을 제치고 미국을 대표하는 여성으로 뽑혔다고 밝혔다.
지폐에 누구 얼굴을 넣느냐는 별도의 법 제정 없이 재무부 장관이 결정하는데 오바마 대통령도 여성을 지폐에 넣는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어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단체 사무국장인 수전 스톤은 “지폐는 역사상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호주머니 안에 든 기념비같은 것”이라며 “여성 참정권 시행 100주년이 되는 2020년까지 해리엇 지폐가 탄생되도록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디언을 탄압하고 흑인을 노예로 뒀던 잭슨보다는 노예를 해방하고 여성 참정권 투쟁에 앞장선 터브만을 기리는 게 백번 옳아 보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