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출범을 맞아 지명된 각료 후보들 가운데 두 번째로 낙마했던 인사는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였다. 박대통령은 미국에서 벤처 성공신화를 쓴 김종훈 후보자를 자신의 창조경제 구상의 실무자로 낙점했다. 김 후보자는 미국 시민권자였지만 대통령은 이를 개의치 않고 그를 골랐다. 김 후보자도 “참 큰 영광이라 생각한다. 힘든 일이지만 한번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고 왔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하지만 그는 몇 주 후 후보자를 사퇴했다. 후보자 자신은 야당의 발목잡기를 이유로 들었지만 한국식 검증 절차에 부담을 느낀 것 같다는 분석이 대체적이었다. 미국 시민권자의 장관취임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도 한몫했다.
김 후보자가 물러나자 박대통령은 격노했다. “삼고초려를 해 모셔온 분”이라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고 들어온 인재들을 더 이상 좌절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담화문까지 내놓았다. 외국출신 인재와 이중국적에 대해 대통령은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최근 한국정부는 이해하기 힘든 조치를 내놓았다. 이중국적 자녀를 둔 외교관들은 대사나 총영사 같은 재외공관장 임명에서 배제키로 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인사에서 ‘자녀 국적 회복확약서’를 쓰고 공관장에 임명됐던 인사들 가운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외교관들이 올 인사에서 국내 소환됐다. 정부는 “이중국적 자녀를 가진 공무원을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에 앉히는 건 적절치 않다”는 ‘임명권자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관장 임명권자는 대통령이다. 이런 설명이 사실이라면 이중국적에 대한 대통령의 진심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이중국적 논란을 무릅쓰면서까지 미국 시민권자를 내각의 주요 포스트에 앉히려 했던 대통령 아니던가. 게다가 박근혜 정부 전·현직 고위 관료들 가운데 이중국적 자녀를 가진 인사들이 상당수라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외교관과 다른 정부요직의 성격이 다르다는 말인가.
대통령의 인식만 이중적인 게 아니다. 관련법 내용도 이중적이다. 지난 2011년 개정국적법이 발효되면서 대한민국은 표면적으로 이중국적 허용 국가가 됐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모순이 적지 않다.
당장 이 법의 15조만 봐도 그렇다. 15조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자진하여 외국 국적을 취득한 자는 그 외국 국적을 취득한 때에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한다”고 돼 있다. 한마디로 외국 국적자가 대한민국 국적을 획득하는 것은 허용해도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 국적까지 얻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일방적인 이중국적 정책이다.
지난 몇 번의 정부를 거치면서 ‘세계화’라는 화두를 우리 모두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그리고 이중국적과 관련해 열린 정책을 펴겠다는 약속도 무수히 나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를 보면 이런 화두와 약속은 빈 소리일 뿐이라는 생각을 절로 갖게 된다. 더구나 업무 성격상 외국에서 오래 생활해야 하는 외교관들에게 자녀의 이중국적을 이유로 불이익을 준다는 것은 시대역행적 조치라고 밖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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