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반 전 겨울 어느 날 북가주 오클랜드 한 전철 역 앞에 하얀색 버스가 도착하자 구글 직원들이 올라탔다. 이 버스는 구글의 통근버스. 올라타는 직원들 틈에는 일단의 시위대가 섞여 있었다. 시위대는 버스에 타자마자 구글을 비난하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을 펼쳐들고 유인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밖에서도 수십명의 시위대가 버스를 에워샀다.
유인물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있었다. “구글 버스 밖의 저들은 당신들을 위해 커피를 나르고 아이를 돌봐주고 음식을 만들어 왔지만 이제 동네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당신들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말라.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집세가 저렇게 치솟을 일도, 우리가 쫓겨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같은 날 오클랜드 다른 곳에서도 시위대가 애플사 통근버스를 막아섰다.
북가주가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고소득 전문직들을 위한 주거지로 탈바꿈하면서 저소득충이 주거할 수 있는 공간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구글과 애플 통근버스를 막아 선 시위는 이런 추세에 대한 저항의 몸부림이었다.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던 도심지역이 재개발 등을 통해 탈바꿈하고 번창하게 되면 기존의 원주민들은 급속히 오른 렌트비를 부담하지 못해 내몰리게 된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 부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산업혁명 이전 귀족계급을 뜻했던 ‘젠트리’(gentry)에서 비롯됐다. 젠트리들의 이주로 생기는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가장 급속하게 나타나고 있는 지역이 북가주이다. IT업체 전문직 종사자들이 몰리는데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문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는 데 있다.
23일 발표된 미국 내 가장 부유한 인구 6만5,000 이상 도시 20개 가운데 상위 3개는 팔로알토, 샌 라몬, 플레즌튼으로 모두 북가주 도시들이었다. 팔로알토의 경우 주택 중간가격은 무려 250만달러다. 실리콘밸리만 봐도 주택 중간가격이 83만달러로 캘리포니아 전체 중간가격인 41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다. 원 베드룸 아파트는 평균 월 3,500달러이다.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저소득층 근로자들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 주거비용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점점 더 먼 곳으로 밀려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긍정적 주장도 물론 있다. 부유층이 들어오면서 지역이 개발되고 일자리가 늘면 정부 세수가 늘어나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빈곤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저소득층의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안겨주고 경제적 양극화를 더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피해가기는 힘들다. 북가주는 부자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지만 동시에 노숙자가 가장 많은 곳이라는 사실이 이런 비판을 뒷받침해 준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뉴욕에서는 브루클린 재개발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이곳에 살던 흑인들 수만 명이 다른 곳으로 밀려났다. 중국 같은 고속성장 국가들에서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한국 역시 그렇다.
한국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27일 전국 37개 지방자치단체들이 모여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양해각서 체결식’을 연다고 한다. 바람직한 움직임이다. 이제 젠트리피케이션은 사회적 공존을 위해 더 이상 외면하고 방치할 수 없는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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