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조크 하나. ‘한 야구팬이 신에게 물었다. 레드삭스가 언제 우승할 수 있을까요. 네 대(代)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컵스는 언제 우승할 수 있을까요. 내 대에서는 불가능하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2004년 ‘밤비노의 저주’에서 86년만에 풀려났으나 컵스는 108년 동안 무관이다.
스포츠에 과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엘리트 스포츠에는 선수 관리부터 새로운 통계 기법까지 과학 의존도가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과학이 스포츠에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게 바로 징크스다. 이 분야는 여전히 미신에 의존한다. 아침에 영구차를 보면 이긴다는 미신, 이제는 풀렸다고 믿는 밤비노의 저주와 현재 진행 중인 염소의 저주까지.
시카고 컵스는 한 도시를 연고로 한 가장 오래된 미국 프로야구팀이다. 1908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고 1945년 이후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 적도 없다. 지난해 플레이오프에 오르자 ‘백투더퓨처’ 영화가 컵스의 우승을 예언했다고 시끄러웠다가 잠잠해 졌다. 그리고 올해, 어김없이 ‘염소의 저주’가 다시 화제다.
올 시즌 컵스는 견줄 팀이 없을 정도로 막강하다. 30개 팀 중 유일하게 100승을 넘겼고 일찌감치 플레이오프에 안착했다. 그리고 7일부터 5전 3선승제의 내셔널리그 디비전 시리즈에 돌입한다. 팬이나 구단이나 선수나 모두 ‘Now or Never’의 심정이다. 승률로나 전력 면에서만 보자면 올 시즌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은 ‘따논 당상’이다. 이번에도 우승을 못한다면 정말로 저주를 받은 걸로 믿어야 한 판이다.
시카고 트리뷴의 릭 코간 기자는 지난 일요판에 ‘빌리 고트의 역사와 신화’를 긴 글로 남겼다. 빌리는 염소 주인이고 염소 이름은 머피다. 이 글은 역사적 팩트들을 찾아 담고 있다. 기록과 빌리의 조카 샘의 기억을 종합했다. 빌리는 1970년 타계했고 샘은 삼촌의 대를 이어 ‘빌리고트’ 태번을 운영 중이다. 샘은 오는 6일 이 식당 겸 술집에서 저주를 푸는 자선 연례행사를 연다.
코간의 칼럼은 염소의 저주가 탄생한 1945년 10월6일 이후 이제까지의 경과를 적고 있다. 당시 뤼글리 구단주가 냄새난다는 이유로 염소의 월드시리즈 4차전 입장을 불허한 사실부터 컵스가 시리즈에서 패한 뒤 빌리가 뤼글리에게 “누가 냄새를 풍기는가”하고 야유 전보를 보낸 일, 선타임스 칼럼니스트가 중재를 해서 뤼글리의 사과를 받고 저주를 철회한 과정까지. 저주 해프닝은 그렇게 종료되는 듯 했다.
그러나 컵스는 성적이 신통치 않았고 코간의 칼럼은 계속된다. 빌리나 조카 샘, 그리고 컵스 구단은 협심해서 저주를 끊으려고 애를 썼다. 1969년 빌리는 뤼글리에게 다시 편지를 썼다. 저주는 끝났다고. 조카 샘은 1973년 오래전 죽은 머피 염소의 대역 소크라테스를 리무진에 태우고 컵스 구장 입구를 도는 의식을 거행했고 1984년 컵스의 당시 제너럴 매니저였던 댈러스 그린은 빌리고트 식을당 찾아가 염소를 구장으로 초대했다. 그 결과 샘과 염소 한마리가 시즌 오프닝 경기 때 마운드에 올라 저주를 푸는 의식을 가졌다. 1994년에는 컵스의 전설 어니 뱅크스가 샘과 염소를 극진히 구장으로 모시기도 했다.
2003년10월 14일 샘은 두 아들과 염소 한마리를 데리고 컵스 구장을 찾았다가 입장을 거절 당한다. 소위 ‘바트맨 게임’으로 불리는 그 경기에서 컵스는 역전패 했고 시리즈를 내줬고 월드시리즈 진출이 좌절됐다.
샘은 올해는 컵스 구단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고 칼럼은 전하고 있다. 컵스가 자신이 있는건지 더 이상 미신을 안 믿기로 한건지 알 수는 없지만 염소 입장 시도조차 하지 말기를 샘에게 부탁하고 싶다. 컵스의 우승이 시카고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건 미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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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태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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