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한 원피스다. 쭈글하고 낡은 카키색 옷이지만 이 여인에게는 짝달라붙는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여인은 가방 하나를 어깨에 메고 커다란 여행가방 하나는 끌면서 방을 나온다. 그리고좁고 기다란 시골길에 있는 벤치뿐인 버스 정류장에서 다음차를 기다린다. 남미의 어느 시골인 것 같다. 마치 50년대 대한민국 어느 시골길 버스를 연상케 한다.
이제야 처음부터 은은하게 흘러나오던 음악소리가 있음을 느낀다. 곡명 모르는 탱고다.
아! 탱고!--- 탱고라는 음악을 처음 맛보게 한 곡명이 La Cumparsita 이었다. 피난길에서 되돌아와 고등학교를 처음 들어갔을 때 골칫덩이 이웃집 여대생 미스 홍이 가르쳐준 음악과 춤이다. “너 이 정도는 알아야 네 또래와 연애같은거 할수있는거야, 임마.” 마치 자기는 이미 레이다 밖이라 는걸 선포하는 듯 했다. 그게 아닌데... ---기다리던 차가 온다. 완행버스 맞다. 버스 안에는 개도 있고 돼지 새끼도 뛰놀고 한두 마리 닭들도 마치 탱고에 맞추어 춤을 추듯 버스 안을 휘젓고 있다.
차에서 내린 여인은 어느 허스름한 호텔에서 등록을 한 후 자기 방에 들어가 침대에 벌떡 눕는다. 잠시 후 침대에서 일어나 세면대 앞에서 얼굴을 한두 번 매만지고 밖으로 나온다. 여전히 탱고가 뒤를 따른다. 서서히 음율이 커지며 웅기중기 사람들이 모인 게 보인다. 두겹 세겹 쌓인 사람들을 헤치고 보니 한 쌍의 남녀가 춤을 추고 있다. 옥타브가 올라가며 환상의 한곡이 끝나자 춤을 추던 남자가 다가온다. 아!흉할 정도로 찌그러진 주름살로 얼굴이 덮친 노인이다. 춤을 추자고 뻗는 팔을 뿌리치고 여인은 가던 길로 발길을 옮긴다. 어느 가게 진열장에 눈이 멈춘다. 연두색 드레스다. 한동안 머리를 갸우뚱 하면서 서 있다가 무슨 결심이라도 한 듯 여인은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간다.
할머니 한분이 반갑게 맞이한다. “드레스?” 하고 묻는다. 여인이 그렇다고 하자 할머니는 쭈욱 매달린 드레스중 하나를 집는다. 여인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진열장 그 드레스를 가리킨다.
“아 - ” 알았다는 듯 그걸 가져온다.
“와 아 -- ” 할머니의 감탄이 흘러나온다. 그 옷으로 바뀐 여인의 모습은 허술한 카키색 원피스의 여인이 아니다. 여인도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만족하게 바라본다. 이어서 그는 안쪽 옷걸이에 매달려있는 팬티 하나를 집어온다. 마치 고쟁이 양다리를 덥석 자른 듯 한 촌스럽기 짝이 없는 하얀색 팬티다.
“No, No!”할머니가 기절을 한다. 그리고 작은 상자 하나를 진열장에서 꺼낸다. 빨갛게 단풍이든 한 조각 나뭇잎새 만한 작고 화려한 팬티다.
“No, No!” 이번에는 여인이 기절을 한다.
한동안 마주보는 두 사람의 머리가 좌우로 움직이다 어느 순간 절충을 하나보다. “이 세상에서 내 팬티를 볼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요!” “사람의 운명은 아무도 몰라요, 누가 알아요? 그 팬티를 몇 백 명 몇 천 명이 보게 될지...” 단풍든 나뭇잎 두 개쯤은 되는 팬티와 연두색 드레스를 입고 걸어 나오는 여인의 발걸음은 무척 빠르다. 방금 전 탱고의 무대로 되돌아온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여인에게 쏠리고 탱고 할아버지는 두 팔로 부른다.
탱고 할아버지의 능숙한 리듬에 맞추어 여인의 드레스도 날듯이듯 나부낀다. 빠알간 두잎새 팬티는 나보라는 듯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화면의 영상이 사라질 때도 탱고의 선율은 그칠 줄을 모른다.
--- 며칠 전 KQED TV 에서 본 짤막한 “Image Maker” 라는 프로그램 한 장면이다. 누구나 이렇게 짤막한 작품을 출품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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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선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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