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랄 때 그렇게도 북적거리며 많던 형제, 자매들이 가을바람에 낙엽지듯 앞서거니 뒷서거니 위, 아래 순서도 제치며 하나씩 하나씩 부모님 곁으로 다시 모이기라도 하듯 떠나간다. 이제 형제라곤 단 하나, 8년 위인 작은 누님 뿐임을 알고선 스스로 놀라며 갑자기 외로움이 엄습해온다.
한 달여 전 한국에서 절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그 극성맞은 코로나19에 연로하신 작은 누님이 걸렸단다. 평소의 카랑카랑하시던 명랑한 목소리는 간 데 없고 마치 죽음의 골짜기에서 헤매는 듯한 가냘픈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수화기 저 건너편에서 메아리 칠 뿐이다.
예감이 좋지 않다. 다만 나이에 비해 평소 건강관리를 누구보다 잘 해 오신 것을 알고 있기에 희망을 갖고 누님에게 혼신을 다해 격려한다. 좋은 목소리에 평소 노래하기를 좋아하셔 성악가가 제격이었을 텐데 6.25 사변으로 그런 꿈은….
댄스는 교회나 공동단체에서 늘 선생님으로 초빙될 정도로 잘 하셨고 등산도, 하여튼 동적(큰누님은 정적)인 분이시다.
그렇던 분이 자신보다 늦게 입원했던 젊은 환자들은 퇴원들인데 자신만이 거의 3주일을 꼬박 병원신세를 지게 되니 겁이 엄청 난 듯 보였다. 전화 받는걸 보면 위독한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아픈 데 전화 받기도 힘들다며 좀 과민반응을 보여 얼마동안은 안부전화도 못했다.
일주일 전, 3일 후면 퇴원한다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셨다. 나흘 전엔 퇴원하여 산책, 아니 지팡이에 의존해 걸었다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들었다. 그동안 많이 쇠약해졌음이 틀림없다.
어젯밤 자정이 아직 안 되었지만 잠이 오질 않아 스마트전화기를 점검하니 누님이 전화하셨던 기록이 있었다. 전화를 드렸더니 웬걸 누님의 그 옛날 명랑하고 활기찬 목소리가, 그 목소리가 아닌가 말이다. 너무 놀랍고, 너무 기쁘기 그지없다. 전화한 이유는 동생 생일 축하였다.
건강이 놀랍게도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가시기에 감사드린다. 7형제자매 중 이젠 누님과 나 둘뿐이다. 허니 100세 시대에 우리도 다른 형제들이 못 다한 삶 더 살도록 건강하게 삽시다. 사랑합니다, 누님!
<문성길 / 의사 전 워싱턴서울대동창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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