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회폭동 1년 현장르포
▶ 제도개선에도 미국민 자존심 상처는 그대로, 국민 선동하는 정치 계속되고 있어
1·6 의회 폭동 사태 1년을 사흘 앞둔 3일 오전 미국 워싱턴DC의 연방의회 의사당은 고립된 섬처럼 보였다.
평소라면 연말 휴회를 끝내고 의회로 출근하는 이들로 북적거렸을 의사당 주변은 짙은 잿빛 세상에 잠긴 채 인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삭막했다.
신년 벽두부터 쏟아진 폭설에 연방정부의 기관들이 비상 인력들만 근무하며 모두 문을 닫은 탓이다.
‘갈등의 용광로’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2020년 11·3 대선 불복 사태 이후 민심을 한데 모으지 못한 채 여전히 분열된 미 정치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했다.
당시 대선 불복은 결국 작년 1월 6일 조 바이든 대통령의 당선 인증을 멈추기 위해 트럼프 지지자 수천 명이 의회로 쳐들어가 민의의 전당을 유린하는 무법천지의 날로 이어졌다.
외견상 의사당은 정상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의사당 주변을 에워싼 철조망이 사라졌고, 최대 2만5천 명까지 무장 상태로 배치됐던 주방위군도 철수한 지 오래됐다.
의회 주변의 보안 카메라 설치 등 장비를 확충하고 주변의 경계 인력을 늘리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최근에는 유사시 워싱턴DC의 주방위군 투입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절차 개선안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모범국을 자처하던 미국 국민의 자존심에 난 상처는 지금도 쉽사리 지워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의사당 앞에서 만난 26세의 남성 에릭은 지난해 의회 폭동 사태 뉴스를 본 뒤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며 “아직도 그날의 충격적 장면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66세 남성 마크 케스트너도 “내가 배우고 살아온 방식과 너무 다른 일이 벌어져 정말 슬펐다”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존중이 무너진 날”이라고 혀를 찼다.
검찰은 난동 사태에 가담한 시위대 수백 명을 기소하고 의회는 특별위원회를 꾸려 진상 조사를 하며 유사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이 치유되지 못했다는 인식 속에 정치권을 향한 강한 불신의 목소리가 여전했다. 특히 시위를 선동했다는 비난을 받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향한 반감을 표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자신을 에이미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의사당 난동은 국민을 섬기기보다 이용하려 한 정치인들이 초래한 일이라며 미국의 정치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시민은 난입 사태 후 정치가 얼마나 변화했는지 실감 나지 않는다며 국민을 선동하는 정치가 계속되고 있고 이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미 언론은 1·6 난입 사태를 폭동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민주주의 암흑의 날로 평가하지만 유권자의 생각은 지지층 별로 현저히 다르다. CBS방송의 지난달 말 여론조사를 보면 1월 6일 의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민주당 지지층 85%가 ‘반란’이라고 했지만 공화당 지지자는 56%가 ‘자유수호’라고 답해 큰 대조를 보였다. 이런 인식의 괴리는 유사 사례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로도 이어졌다.
한 방송사의 엔지니어로 근무하는 팻이라는 이름의 남성은 “아직도 트럼프가 대선을 빼앗겼다는 음모론을 믿는 이들이 많다”며 “정치인에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이런 흐름을 이용하는 언론도 공동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케스트너는 난입 사태 1년이 지났지만 치유되기보다는 생각이 다른 사람 간 증오가 여전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며 어떤 계기가 생기면 다시 폭발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는 전염병 대유행 탓에 음모론을 믿는 이들이 집단행동을 억제한 측면이 있었다고 본다며 새로운 폭력이 불거질 여러 요인이 해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고 우려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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